[약값인하 첫날]약가인하 현장 가보니
"약국에 약이 떨어졌는데 일단 처방전을 맡겨 놓으시면 2~3일후에 약을 지어 연락드릴께요. 오늘부터 약가가 전체적으로 인하돼 재고를 모두 반품한 상태라 고혈압 약이 하루분량밖에 없어요. 다른 약국에도 비슷할 겁니다."
일괄 약가인하가 시행된 후 첫 평일인 2일 일선 약국에서는 반품으로 인해 당뇨약, 고혈압약, 항생제 등의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건강보험의 적용받는 전문의약품 1만3814개 품목 중 6506개 품목의 보험약가가 지난 1일부터 평균 22.3% 인하됐다. 약가인하 규모는 연간 1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약국 "반품으로 일부 의약품 품귀"=이날 서울 종로구 적선동 P 약국의 정모(53) 약사는 처방전을 들고 온 70대 고혈압 환자에게 사정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고혈압 약의 경우 아직 오리지널 비중이 높아 N사 등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가인하에 대비해 한두 달 전부터 공급을 줄여와 부족사태가 더욱 심각한 수준.
정 약사는 "지난 주말부터 감기환자는 느는데 아목실린 등 보험급여 비중이 낮아 본임 부담액이 높은 항생제를 구하기 매우 힘들다" 면서 "고가 약에 속하는 항생제는 모두 반납한 상태라 복통이나 목이 아픈 감기약은 제대로 짓기 힘들다" 고 하소연했다.
그는 "요즘 간혹 나오는 신종플루 처방의 경우 유일한 약인 타미플루는 약가인하에서 제외돼 반납처리를 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 이라며 "장기처방이 많은 당뇨약과 고혈압, 항생제등이 가장 구하기 어렵다"고 사정을 전했다.
이 같은 사정은 도매업체도 마찬가지. 약국으로부터 반품주문을 받는 즉시 직원들이 제약사로 반품처리해 버린 상태에서 2일 오전 한꺼번에 주문이 밀리자 오후에는 아예 주문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
도매상 L사 관계자는 "전문약에 대한 반품과 그에 따른 정산과 재주문 등으로 이어지는 혼란이 앞으로 2~3주는 지속될 것 같다"면서 "일선 약국에 약이 제대로 공급되는 것은 약국별로 정산이 끝난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마저도 일부 도매상은 제조업체의 마케팅정책에 의해 약국이 요구하는 물량을 모두 반품처리 하지 못하고 3개월 공급량을 기준으로 일부만 반품을 받아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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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반품·약가인하로 실적부진 불가피 =제약사들은 도매상과 약국이 반품과 관련해 합의를 본다면 반품을 원활하게 받아주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품으로 인한 실적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대형제약사 관계자는 "당분간 재고물량 약값 인하분 만큼 마이너스 매출이 발생하게 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2~3개월간 제약사의 매출이 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대형 제약사는 순차적으로 손해가 나는 의약품의 생산을 줄이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형 제약사 한 관계자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힘든 구조가 됐다"며 "하반기 들어서면 대개 제약사들이 품목당 이익률을 따져서 품목 조정 작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형제약사보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형제약사들은 이미 '역마진'이 나는 제품의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실제 매출 1000억원 내외, 100개 정도의 전문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는 중소 제약사 A사는 최근 20~30개 정도의 전문의약품 생산중단을 고려하고 있다.
김현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소형제약사가 제품과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에 먼저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약가인하는 불확실성 해소, 제약주 '상승'=약가인하가 시행된 뒤 첫 거래일인 2일 제약주는 대부분 상승 마감했다. 1년이 넘도록 약가인하가 예정됐던 만큼 차라리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동아제약은 전거래일보다 1.11% 오른 8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광동제약(2.73%), 한미약품(1.33%), 대웅제약(0.93%)도 강세로 장을 마쳤다.
약가 본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이날 제약주가 선방했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섣부른 투자에 나서기 보다는 실적 바닥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 의사들 "오리지날 처방 늘어날 수도"=이밖에 각 병원들에서는 처방 패턴 등에 눈에 띄지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료주체인 의사들이 환자나 제약사에 비해 약값에 대한 체감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가격경쟁력이 생긴 오리지널의 처방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은 제기됐다.
한 내과 의사는 "의사가 나서서 매일 약을 먹던 환자에게 다른 약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환자가 직접 이야기 한다면 또 다르다"며 "예를 들어 가격 때문에 제네릭을 먹던 고혈압 환자가 오리지널인 노바스크를 처방해달라고 하면 부담 없이 약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약가 인하 정책으로 특허 기한이 만료된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가격이 함께 내려가면서 일부 신약 가격이 제네릭의 가격과 같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일괄 약가인하 대상 주요 전문의약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