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PI(소비자물가지수)와 GDP(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 상승률이 48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통상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이는 두 수치는 올해 6%포인트(p) 이상의 이격을 보일 전망이다.
이는 반도체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원인으로 명목GDP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경제 규모의 증가가 가계·기업의 소비·투자 여력을 키우면서 수요를 자극할 우려도 있다. 특히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장기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잖다.
26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명목GDP 성장률 전망치를 12.3%로 높여잡았다. 명목GDP 성장률은 실질GDP 성장률(3%)과 GDP디플레이터(9%)를 곱하는 방식으로 산출한다. 올해의 경우 재경부 경제성장전략을 기준으로 '1.03×1.09=1.1227' 공식을 활용해 12.27%라는 명목GDP 성장률이 산출됐다. CPI는 2.6%로 내다봤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두 수치를 비교한 결과 차이가 6.4%p 벌어진 것은 1978년 이후 48년 만이다. 1978년도엔 CPI와 GDP디플레이터(2020년 기준) 상승률이 각각 14.5%, 21.8%를 기록했다.
가계가 소비하는 458개 품목을 대상으로 구성되는 CPI와 달리 GDP디플레이터는 소비, 투자, 수출입 등 모든 GDP 지출항목을 포괄하는 물가지수다. 국내 최종생산물의 내수와 수출입 가격을 종합한 물가 수준을 볼 수 있다.
GDP디플레이터와 CPI는 통상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지만 원유 가격 등이 오르면서 CPI가 급격하게 상승할 때 차이가 벌어진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CPI(2022년 5.1%, 2023년 3.6%)가 폭등하면서 GDP디플레이터(2022년 1.7%, 2023년 1.9%)를 뛰어넘었다.
이와 달리 GDP디플레이터가 더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반도체 가격 상승에 기인하는데, 물가 상승이 아닌 산업 여건이 변화한 영향이란 얘기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549억달러로 전년 대비 52.3%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180.6% 늘어난 221억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체 수출액의 40.3%에 달하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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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최근 반도체 가격 상승은 수출디플레이터를 통해 GDP디플레이터에 상방압력으로 작용함에 따라 명목GDP 성장률도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명목GDP는 올해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17.1%, 전기 대비 10.5% 증가했다. 2분기도 두 자릿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두 수치가 벌어진 건 매우 유의미한 현상으로 명목 성장률이 높아진단 것"이라며 "결국 교역조건이 좋아지는 것과 연관돼 있어 한마디로 반도체 가격 높아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평소 같이 움직이던 CPI와 GDP디플레이터 사이 이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출 가격 상승에 따른 소득 증가 효과도 과거보다 오래 유지될 전망이다. AI발 반도체 호황이 구조적 변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수에 미치는 파급력 또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 1988년 1분기 이후 38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이같은 GDI 증가는 가계와 기업의 소비·투자 여력을 넓히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반면 수요를 자극해 장기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더해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경제 전반으로 골고루 확산되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을 키운다. 명목GDP 성장률이 올라가면 가계부채나 국가채무비율이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GDP 대비 가계·국가채무비율은 분모를 명목GDP로 해 경제 규모가 커지면 낮아지는 구조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층·지역 간 양극화 우려가 있는 상황에선 얘기가 다르다. 취약 부문의 소외가 커질 수 있어서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여파까지 가세할 경우 취약계층의 타격은 적잖을 전망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이 꼭 긍정적으로만 해석되지 않는 이유다.
허 교수는 "반도체 호황으로 경제 지표가 개선돼 금리 인상까지 연결된 건데 중소기업이나 수출비중이 적은 기업 등은 여전히 어렵다"며 "이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호황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연쇄 효과가 떨어진다"며 "반도체와 연관된 사업들이 많지 않고 고용 효과도 크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