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타살될 수 있는 '경고'

[우리가보는세상]타살될 수 있는 '경고'

김고금평 기자
2014.06.02 05:00

메일 아트의 창시자 레이 존슨(Ray Johnson·미국의 예술가·1927~1995)은 짓궂은 작은 콜라주(풀로 붙이는 근대 미술의 한 기법)나 아름답지만 우승꽝스러운 오브제(초현질주의 미술에서 사용된 상징적 물체)를 만들어 지인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이 우편물을 받은 사람은 다시 자신의 지인들에게 보냈는데, 존슨의 주변 예술은 이 같은 방식으로 나름의 대중과 소통 창구를 마련한 셈이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다리에 뛰어내려 바친 자신의 목숨이었다. 조각들을 이어붙여 만드는 콜라주 방식의 방점을 목숨으로 찍어 예술을 완성한 것이다.

미국의 배우 스폴딩 그레이는 1987년 독백 영화 ‘캄보디아로 헤엄치기’에서 수영할 때 느낀 ‘완벽한 순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태국 해안에서 수영할 때 파도와 조류, 상어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멀리, 아주 멀리까지 헤엄쳤는데, 어느 순간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상어가 물어뜯을 몸이 없어지고 윤곽선도 없어지고 ‘나’라는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2008년 가수 김창완이 산울림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김창완밴드’로 다시 일어섰을 때 가진 기념 파티의 제목은 ‘레이 존슨 파티’였다.

당시 막내 동생 김창익을 사고로 먼저 보낸 김창완은 마음 속의 울분과 분노, 사랑과 죄책에 대한 감정들을 음악과 물아일체를 통해 ‘완벽한 순간’으로 재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김창완은 이 파티 자리에서 “관객은 뮤지션의 노래를 원하지 않고, 그의 목숨을 원한다”며 “무대에 서는 뮤지션은 목숨걸고 노래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목숨걸고 노래하라’는 말이 갖고 있는 숨은 메시지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음악이 갖고 있는 속성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건 음악하는 자가 자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타살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죠. 우리는 늘 작품을 화폐와 교환하길 원하지만, 작품이라는 것이 오히려 가난으로 인해 자기 목을 조를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그런 두려움에 과감히 맞서라는 의미인 셈이지요.”

‘재난 천국’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대한민국의 요즘을 보고 있노라면, 관계의 속성, 즉 ‘타살될 수 있는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의 부재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실감케한다. 세월호 참사로 시작된 각종 사고의 안타까움은 단순히 안전 불감증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숨걸고’ 그 일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하는 속성의 문제다.

언제 어디서부터 속성이 비틀어졌는지, 그리고 속성의 왜곡 현상으로 감동은 왜 감상 수준으로 격하되었는지 쉽게 간파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조각가 스콧 버튼은 “만약 삶이 흐름과 변화, 우연, 시간과 불예측성을 뜻한다면 삶은 예술을 침범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예술을 침범할 만큼의 감동적 행위를 이제 바랄 수 없는 걸까. 삶에서 ‘우연한 걸작’을 기대하는 것이 ‘필연의 몸부림’이 아닌 ‘(인간) 속성의 자연스러운 발로’에 기인될 수 있음을 다시 자각해야할 시점이다. 감동은 목숨에서 시작해, 목숨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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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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