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세는, 남들 다 낳는 애, 자기만 힘든가.”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의견이 충돌해 썩 사이가 좋지 않은 선배이긴 했으나 그래도 그런 말을 던질 준 몰랐다. 유산기가 있어 조심하라는 의사의 말도 걸렸는데 그날은 유난히 배가 당기고 아팠다. 여직원 휴게실이 없어 동료 몇의 도움을 받아 회의실 긴 탁자에 방석을 깔아놓고 누웠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참았다. 동료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뭐? 자기 마누라는 애 안 낳는데? 저게 선배라고….”거들고 나선 동기를 뜯어말렸다. 동기는 “그래, 한자라도 더 배운 우리가 참자”며 그녀를 웃겼다.
드라마나 소설이 아니다. 내 얘기다. 16년 전,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다. 선배도 동기도 다 남자다. 남자 동기의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라는 단어 때문이다. ‘신기자, 네가 참아’가 아니라 ‘우리가 참자’는 말에서 받은 동료의식은 큰 위로가 됐다.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을 향해 똑같은 방법으로 대처하는 ‘미러링’ 방식에 대한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그 문제를 다룬, 사실상 옹호하는 입장의 시사잡지를 절독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신들도 똑같이 당해봐!’ 공격받은 이들에게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성의 분위기는 안 읽힌다. ‘남성혐오’을 조장한다며 핏대를 세운다.
앞선 경험은 약과다. 나이 50을 향해가면서 ‘여자이기 때문에’ 겪거나 당했던 위험한 일을 늘어놓자면 1박 2일도 모자라다. 비꼼이나 비하 같은 언어폭력과 희롱 수준이 아니다. 성추행부터 성폭력 위험까지, 돌이켜도 진저리나는 일은 특정 여자만 겪은 게 아니다.
가끔 페이스북 ‘메갈리아4’를 둘러본다. 이유는 경각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언론 기사 제목에서부터 광고까지,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가 여성을 얼마나 비하하고 무시하는지 세세하게 꼬집는다. 어느 날인가, 여성이지만 나의 성장과 지금의 내 모습은 남자가 주도하는 사회의 결과물임을 새삼 느낀 적이 있다. 여자 후배들이 틀렸다고,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를 ‘나는 이미 아는 내용’이라고 하지 않고, 남자 어른의 입장에서 귀 기울여야겠다고 반성하기로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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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이미 달라졌다. 그 여자에는 내 딸도 포함돼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내 교육방식부터 부모세대와 다르다. 사회생활을 하는 내가 자랑스러워도 엄마는 “그래도 여자인데, 어디 아녀자가”를 입에 달고 사신다. 듣기 거북하지만 참을 뿐이다. 하지만 손녀에게만큼은 절대 하지 못하도록 노모를 단속한다. 적어도 16년 동안 우리 부부는 딸에게 “여자애가” 따위의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고 나면 ‘김치녀’나 ‘된장녀’ 같은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질세라 그 반대어가 나와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건강하고 당당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면서 뒤로 숨지 않는 여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미러링에 화가 나는 이유는 딴 거 없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야. 누구 발상인지, 최고의 공격 수단이 맞는다니까. 생각해보면 남자들은 그 오랜 시간 아무 생각 없이 그랬는데…. 참, Y대 남학생, 단톡방 고해성사 나온 거 봤어? 예나 지금이나 유구무언이다, 유구무언.”
16년 전 나를 위로해 준 남자 동료는 미러링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충격요법’이 끝난 후가 더 걱정이다. 더불어 아들이 어떻게 컸는지 기억 나지 않고, 잘못된 분노의 대열에 서 있지 않나, 알 수 없어 걱정이라고 한다.
“페미니즘 관련 해외 저자들의 인세가 1만 달러를 넘어섰어요.” 한 출판사 남자 사장의 시장 분석이다. “두고 보세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남자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