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 하나와 사투" 김동률과 '친구들'이 보여준 무서운 '장인 정신'

"음표 하나와 사투" 김동률과 '친구들'이 보여준 무서운 '장인 정신'

김고금평 에디터
2025.11.17 05:56

[김고금평의 열화일기] '산책' 공연 리뷰…한 마디 박자로 달라지는 최고의 무대 "먼지 같은 디테일이 차별화"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아무리 훌륭한 아티스트라도 자신의 공연엔 쉽게 저버릴 수 없는 '패턴화'가 있기 마련이다. 전에 본 내용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 그대로의 박자와 멜로디, 악기 쓰임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 아티스트는 예외다. 극히 일부 구성을 제외하고 전보다 나은, 원곡보다 더 다른 질감과 느낌의 곡으로 변화 또는 진화를 생각하는 데 모든 힘을 쏟는다. 그렇게 구현한 무대는 단박에 시청을 압도한다. 당연히 그가 구현한 미세한 차이의 흔적들을 관객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하지만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지고 귀가 열린다. 그의 무대는, 백 마디의 설명이 아닌, 단 한 마디의 달라진 박자로 '최고' 또는 '완벽'의 후기로 다시 쓰인다.

지난 8~16일 모두 7회에 걸쳐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산책' 무대를 연 김동률 공연 얘기다.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그는 이번 공연의 '색깔'을 또렷이 정의했다.

대중이 요구하는 '히트곡'이 아닌 자신이 완성하고 싶은 '숙제곡' 중심의 무대가 그것이다. 김동률은 이렇게 말했다. "셋리스트를 정할 때 그런 고민을 늘 해요. 익숙한 곡을 할 것인가, 아티스트로서 들려드리고 싶은 곡을 할 것인가. 저는 제 노래를 오래전부터 들은 팬들을 먼저 생각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편이에요. 그분들한테 잘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거든요. 안 그러면 처음 온 관객들만을 위해 매번 똑같은 곡들을 반복해야 할 테니까요."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약간, 아니 많이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듣고 싶었던, 아니 들어야 했던 '출발' '리플레이' 같은 곡들은 반드시 포함될 거라는 기대 역시 저버려야 했다. 대신 '희망' '망각' '하소연' '동화' 같은 대중에게 덜 알려진 노래들이 거침없이 소환됐다. 그렇게 처음 보여주는 '시도'의 숨은 걸작들은 원곡과 다른 섬세한 편곡으로, 또는 풍성한 악기 편성의 힘으로 다시 날아올랐다.

처음 소개돼 생경해질 분위기를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한 마디조차 시선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도록 초 단위로 집중력을 투사한 그의 구성력은 먼지 한 톨 잡히지 않은 '깨끗한 집'을 만나는 것처럼 연신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히트곡을 모은 곡으로 무대를 꾸리는 여느 아티스트의 '패턴화'를 좇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느 무대보다 더 많은 말을 쏟아야 했다.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인의 손때'들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음악으로 먼저 감탄하고, 설명으로 감동받았다.

2008년 '모놀로그' 공연 이후 시그니처 오프닝으로 굳어진 '사랑한다는 말+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무대는 17년이 지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함께 말없이 동고동락 해온 모든 연주자와 스태프가 한 몸이 된 '값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증명됐다.

이는 밴드와 오케스트라가 김동률이 타고 내려온 무빙 라이저(Moving Rizer) 양옆으로 갈라지는 화려한 시작에서, 남색과 보라를 이토록 '예쁘게' 표현하는 남다른 조명 감각에서 그리고 쉽고 빠른 디지털 영상 제작 대신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연극 형식의 아날로그 작화로 무대 그림을 완성하는 인간적 숨결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음악'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 그의 무대는 '김동률' 오로지 한 사람의 공연인 듯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와 '친구들'이 혼연일체로 엮인 블록버스터 무비로 수렴됐다. 피아노에서 기타로 완전히 새롭게 편곡한 '겨울잠'을 두고 김동률은 "(김)동민 군에게 부탁했는데, 너무 잘 표현해서 나는 그냥 이렇게 고급 선율에 보컬만 얹어 업그레이드했다"고 소개했다.

'옛 얘기지만'에선 베이스 두 대에 드럼까지 추가로 편곡하고 결혼식 축가로 가장 많이 쓰인다는 '동행' 대신 자신이 더 기대했지만 품 안에만 맴돌았던 '내 사람'을 선보인 것도 파격 행보였다.

김동률은 한 곡 안에서의 모든 연주자 파트를 드라마로 만들 줄 아는 각본가였다. 코러스 8명이 '희망'에서 아주 짧은 8마디만 부르고 빠졌는데도, 그 소리의 덧칠이 깊고 웅장해 여운이 적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멤버들, 혼 섹션 연주자들 모두 자신만의 시간에서 보여준 연주는 단순히 자신에게 할당된 연주를 소화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호흡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관객과 대화했다. 멜로망스의 정동환이 이 무대에서 보여준 피아노 타건은 그의 '재즈력'과 리듬감을 재정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현은 절제되고 혼(horn)은 유려하며 타악은 강렬한, 이 무대의 서사들은 자부심, 책임감, 열정 같은 가치들과 연결됐다. 그건 김동률의 무대이기에 가능한 조합과 상상이었다. 시작은 꼼꼼한 김동률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연습도 복잡해지면서 저마다 '김동률 마음' 같이 변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2년 만에 '산책' 무대에 오른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김동률은 또 이렇게 말했다. "1999년 미국 버클리 유학을 하러 갔는데, 입학 전 배리 매닐로우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빅밴드 야외공연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졸업하고 돌아와서 이지원(지휘자)씨와 편곡하고 악보 다시 그리고 연습해서 무에서 유를 만들었던, 그렇게 5년 만에 꿈을 이뤘던 2004년, 그때부터 조명 감독님도 합류하고 그랬어요. 그땐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절박함이 컸던 것 같아요. 그 무모한 용기 덕에 오늘이 있었던 셈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는 밴드 연습 따로, 오케스트라 연습 따로 해서 나중에 같이 만나 연습하는데, 첫날부터 바로 공연을 해도 될 만큼 연습이 거의 완벽해요. 그래도 편곡 과정에서 쉼표를 8분음표로 할까, 8.5분 음표로 할까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고치고 또 고치죠. 그런 먼지 같은 디테일이 모여 뭔가 다름을 만들어내서 여러분들이 찾아오시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김동률의 말대로, 그의 30여년 음악 인생은 '절박함'과 '치열함'의 연속이었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단박에 인기를 얻고 이듬해 낸 첫 음반부터 승승장구했던 그는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며 "이번이 마지막 (음반 또는 무대)"이라는 절박함으로 모든 음악의 순간과 만났다고 했다.

그 절박함과 치열함은 뮤지컬 시리즈 3부작 곡에서, 재즈곡 시리즈에서 형언하기 힘든 세련미와 리듬감으로 객석을 압도하는 장면으로 구현됐다. 특히 '여행'과 'J's Bar에서' 같은 재즈 넘버에선 스윙, 비밥 같은 정통 재즈 리듬들을 아낌없이 모두 쏟아냈다.

그가 앙코르 무대에서 고른 첫 곡은 '첫사랑'이었다. 지난해 전람회 멤버이자 친구 서동욱을 잃은 김동률이 준비한 추모곡이었다. 원곡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후렴구 '우우우~'가 이렇게 사무친 그리움을 전하는 호소의 언어로 쓰인다는 걸 느끼면서 다시 이 곡의 애청자가 되었다.

결어로 준비한 '기억의 습작'은 이제 더 이상 '습작'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대미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굵은 보이스로 시작하는 흡인력, 조용히 그러나 굳세게 선율을 조이는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에너지, 자신의 모든 열정과 노력을 토해내겠다는 뮤지션십의 끝을 보여주는 마지막 절창까지. 노래의 구석구석이 듣는 이의 슬픔과 상처, 후회와 회한을 건드린 탓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짧고 강렬한 만남이 앞으로 서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되면 더할 나위 없다"고 했다. 그렇게 최소한 2년을 더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아닌 허무가 스쳤다. 우리는 김동률 이후의 아티스트를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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