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희태 감독은 음악 애호가였던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서 감독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연주하던 누나, 첼로를 다루던 동생과 함께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해 합주를 하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서 감독이 중학교에 진학을 하자 바이올린을 빼앗았다. 아들이 음악의 길로 갈 것을 걱정한 때문이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을 하며 가난하게 살 것을 걱정했다.
서 감독은 결국 고3때 부모님 몰래 부산대 성악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변변한 레슨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음대에 진학하자 아버지는 "음악을 할 거면 독립해라"라고 했고, 서 감독은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생계를 꾸렸다. 공사판 막노동에 지게 배달꾼 일도 하면서 모은 400만원을 들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입 때 기적은 유학을 와서도 계속됐다. 서 감독이 처음 입학한 학교는 헝가리의 '리스트 음악원'이었다. 서 감독은 관광 차 들른 이 학교에 완전히 매료됐다. 연주홀과 연습실 시설 모두 환상적이었다.
서 감독은 당장 학교 입학관리처로 달려가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입학관리처 직원이 서 감독의 이름을 듣더니, 이미 합격했으니 담당교수를 만나보라고 말했다. 대입에 이은 또 한 번의 기적이었다. 대입 때는 레슨 한번 받지 않고 음대에 합격하더니 유학 와선 원서조차 내지 않고 합격한 셈이었다.
"알고 봤더니 이 학교 합격생 중에 이름이 '수'로 끝나는 한국인 학생이 있었던 거에요. 제 성인 서(Suh)를 이곳에선 '수'로 발음했거든요. 저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던 거죠. 헝가리 음악원에선 결국 둘 다 합격시켜줬어요."
이후 서 교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립 콘서바토리와 러시아 그네신 음악원에서 성악, 지휘, 음악교육 등을 공부했다. 이후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전문 음악 드라마로 서 감독은 스타 음악인이 됐다. 음악은 언제나 서 감독 편이었고, 단 한 번도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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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유학시절 만난 성악가 고진영 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고3인 아들은 플루트를, 고1인 딸은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