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습사무관이 바라본 국회예산심의

[기고]수습사무관이 바라본 국회예산심의

문희영 기획재정부 예산실 수습사무관
2010.01.05 16:40
[편집자주] 2010년 예산안은 7년째 헌법이 정해준 법정처리시한을 넘겼을 뿐만 아니라 새해를 3시간 남짓 남겨두고 국회를 통과했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재정당국의 속은 타들어간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배정된 지 1개월 남짓한 수습사무관이 머니투데이에 보내온 기고에는 까맣게 탄 예산실 직원의 속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49개 부처를 대상으로 종합정책질의를 시작하던 12월 7일. 기획재정부 예산실 1개월차 수습사무관으로 역할은 적시에 답변자료를 챙겨야 하는 소위 '장관보좌'였다.

'탁탁탁' 세번의 의사봉소리를 시작으로 국무위원과 예결위원간의 불꽃 튀는 예산전쟁의 막이 오르고, 이는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생중계되는 국회 방송을 보고 '코미디 같다'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지만 예결위 회의장 뒤에 숨겨준 부속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회의장만큼 긴박하고 흥미진진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소위 '골방'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말 그대로 좁은 방으로 재정부 예산실의 직원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모여 실시간으로 회의준비를 하는 곳이다. 직원들은 장관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의 질의에 보다 정확한 답변을 제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여 있다.

'질의서 사전입수조'가 예결위원으로부터 구해온 질의서가 '골방'에 도착하면 해당 담당자는 빠른 속도로 답변을 작성한다. 한쪽에서는 생중계되는 회의를 모니터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질의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고 '행정지원조'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돕는다.

행여나 장관이 답변하는데 차질이 생길까봐 모두들 촉각을 세우는 곳, 예산안 때문에 여름휴가도 반납했던 예산실 직원들이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휴일을 반납하고 마지막까지 총력전을 벌이는 곳. 이곳이 바로 숨겨진 전쟁터다.

예결위 정책질의기간이 끝나면 예결위와 16개 상임위에서 심의한 내용을 토대로 사업의 증감이 최종적으로 정해지는 계수조정작업이 시작된다. 사업을 감액하면 해당부처에게 마지막 발언기회를 주게 되고 증액·신규사업은 재정부의 신속한 검토작업을 거친다.

예산전쟁이 종전(終戰)에 이를수록 막바지 조정 작업으로 예산실 직원의 업무강도도 한층 높아진다. 특히 지난해에는 성탄절 연휴도 모두 반납해야했다.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27일부터 31일까지 국회에서 밤낮을 지새우며,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선배님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열흘간의 '골방' 참관은 생생한 '재정민주주의' 체험이었다. 부재중인 장관을 나무라며 군기를 잡는 의원, 야당보다 더 무서운 여당 의원, 4대강과 지역구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고심하는 의원들을 직접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대화와 토론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엿보면서 '거수기 국회'는 이제 옛 말이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정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올해도 예산안 심의가 법정기한을 넘기면서 정부는 초조해졌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묘(妙)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 입장이었지만 이번에 정부와 국회의 노고에 대해서 알게 됐다. 여야가 서로 좀 더 이해하고 양보하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2월 예산국회가 지나갔다. 새내기 공무원으로서 아직 모르는게 너무도 많아 행여나 '달의 앞면만 보고 뒷면을 놓치지는 않을까', '전체 코끼리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더듬고 있는 장님이 되지 않을까' 고민이 깊어진 기간이었다.

어렵게 통과한 올해 예산이 알뜰하게 집행돼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데 일조하는 것이 예산실 수습사무관의 간절한 새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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