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닥치면 투자자본이든 장기자본이든 모두 이익 극대화에 노력

최근 한 금융세미나에서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금융안전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이 야기하는 금융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다.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은 선진국 해외자본이 금융 개방화를 통해 개도국 및 후진국의 경제를 약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초 불거진 그리스의 금융위기는 현재 유럽경제 전체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그리스 국민의 절제없는 소비, 과도한 복지정책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이웃나라들도 그리스와 같은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그리스 금융위기의 원인은 10년 전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다. 이때부터 그리스 금리는 하루하루 떨어지게 된다. 18%에서 16%로 다시 10%로 6%로 4%로…. 그리스 국민들은 낮은 금리의 혜택을 여지없이 즐겼다. 낮은 금리로 대출받아 별장을 구입하고, 세컨드 자동차를 구입하고, 비싼 외제차도 구입하고, 또 대출로 대출을 갚고….
그럼 이 많은 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떻게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 있었을까. 그리스가 유럽연합에 가입한 후엔 그리스는 자국통화를 찍어낼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10년 전 그리스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로 돌아가보자. 여기서 그리스의 반대편에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계적 채권투자회사 핌코(PIMCO)가 등장한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는 순간 핌코는 그리스 국채를 사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전세계 다른 채권투자자들도 핌코의 뒤를 따른다. 놀라운 사실은 핌코의 그리스 투자 결정은 그리스 자체의 펀더멘털과 상관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스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유럽연합의 금융지원이 있을 것이기에 투자리스크는 사실상 헤지(hedge)된 셈이었다. 핌코가 고민할 것은 적절한 출구시기(exit timing)만 결정하면 될 뿐이었다.
핌코가 그리스 국채 구입을 계속하는 한 그리스 국민은 마치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부유함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뒤집어버린 사건이 지난해 일어난다. 그리스에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새 정부는 그리스의 재정적자 규모가 이전 정부에서 발표된 수치보다 2배 정도 많다고 발표한다. 그러자 핌코는 보유했던 그리스 국채를 전부 남김없이 매각해 버린다. 그리고 다른 채권투자자들도 핌코의 뒤를 따른다.
그리스 정부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핌코에 그리스 국채를 다시 매입해달라고 사정하지만 핌코는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리고 만다. 그후부터 얘기는 우리가 매일 뉴스를 통해 듣는 바와 같다. 5월 들어 유럽연합은 채권투자자들이 덤핑하다시피 내다파는 그리스 국채를 대신 매입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한국은 1997년 혹독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여러 이유가 거론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에 따른 리스크를 방어할 만한 금융안전망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엔 투기적인 해외자본(예: 소로스)이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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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리스의 금융위기엔 소로스 같은 투기자본이 아닌 핌코와 같은 장기투자자가 관련돼 있다. 모든 해외자본을 소위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금융시장엔 '착한 사마리아인'이 없다. 한국의 외환위기 때도, 지금의 그리스 금융위기 때도 우리는 하이에나와 같은 해외자본이 패닉을 최대한 증폭하며 투자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모습을 목격한다.
금융개방화 속에선 이처럼 투기자본과 장기자본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어진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 확충에 나섰다. 투기적인 해외자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리스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장기자본도 결코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경고한다. 장기자본의 예기치 않은 이탈에 적절한 대응책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더욱이 최근 천안함 사태로 증대된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은 해외 장기자본의 이탈을 촉발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진 금융위원장의 '금융안전망' 필요성 역설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