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차등지급, 박 당선인한테 불명예”

“기초연금 차등지급, 박 당선인한테 불명예”

이경숙 기자
2013.01.18 13:53

[소셜디자이너열전]<18>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스웨덴학교장

[편집자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 DJ 비서관·스톡홀름시의회 전문위원·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역임 복지전문가

- “복지국가란 공정한 삶 살게 해주는 국가..기초연금은 보편적 가치 담은 정책”

- “소아마비 장애 스웨덴에선 못 느껴...배려는 돕는 게 아니라 불편 없게 하는 것”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임성균 기자 tjdrbs23@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임성균 기자 tjdrbs23@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이래 한국 복지제도 발전에 가장 획기적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한 진보 성향의 복지전문가가 박근혜 당선인의 기초연금 공약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3년간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66)다.

그는 17일자 기고문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공약에 있는 기초연금 원안을 반드시 고수하여야 하며, 야당과 시민사회 또한 합리성과 보편성을 지닌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와 동의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보수 성향 정부한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인사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이던 2008년, 그는 '지난 정권의 인사'라는 이유로 8개월 가까이 사퇴 압박을 받다가 퇴임했다.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했던 '청와대 및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리스트에도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그는 민주통합당 성향이다. 민주통합당 보편복지 특별위원, 김두관 대통령 후보 경선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다. 그의 언니는 신낙균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그런 그가 왜 야당과 시민사회에 박근혜 당선인 기초연금 공약을 원안 그대로 지지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사회복지회관의 복지국가여성연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누구에게나 소득 보전...복지국가 첫 걸음"=건물 1층에서 만난 그는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소아마비로 장애가 약간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 드러난다"고 했다. 그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2006년 6월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열린 신필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취임식.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06년 6월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열린 신필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취임식.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그는 대표적인 스웨덴 복지 전문가다. 1998년부터 7년여 간 스웨덴 사회보험청 연구원, 스톡홀름 시의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2011년엔 을 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흥시와 '스웨덴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차등 지급 논란이 일고 있는 기초연금에 대해 그는 "기초연금 차등 지급은 원래 박근혜 당선인이 내놓은 보편적 정책의 기조를 말살시키는 얘기"라며 "이건 당선인한테 불명예이므로 당선인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공약집에서 기초노령연금법을 기초연금법으로 전환하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운영을 위해 국민연금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게 기초연금법의 골자다.

신 대표는 "누구에게나 일정 소득을 보전해주겠다는 건 중요한 보편적 가치를 담은 정책"이라며 "기초연금은 복지국가로 나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저소득층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그는 "기초연금은 소득과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주고 저소득자에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더 주면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식이 일할 수 있는 연령이면 소득이 거의 없는 노인도 기초생활 수급을 받지 못합니다. 제가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수도 없이 봤던 사례에요. 폐지 주워 생활하시는 분들께 20만 원은 굉장히 큰 돈 이예요."

기초연금은 현 세대의 노후복지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약 3000만 명 중 실제 보험료 납부자는 1500만 명으로,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에겐 국가 차원의 노후보장이 없다. 기초연금이 도입되면 이들의 노후도 최소한의 보장 장치가 생기는 것이다.

◇"기초연금은 공적 부조..조세로 예산 마련해야"=재원은 어찌 마련해야 할까. 전체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려면 현행 4조3000만 원의 예산에 7조 원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초연금은 공적 부조입니다. 조세에 의한 예산 마련이 절대로 옳습니다. 아울러 이참에 국민연금과 공적연금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해야 합니다. 국회의원·공무원 등 특수직 연금, '덜 내고 더 받는' 식의 국민연금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스웨덴은 10여 년의 사회적 토론 끝에 1998년 연금제도를 개혁했다. 당초 최고소득 15년간의 평균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던 것을 퇴직시기의 경제, 인구 전망에 따라 다르게 지급하도록 바꿨다.

스웨덴에선 기초연금은 모든 이한테 보장 해주는 대신, 비례연금(ATP)은 보험료를 내는 만큼 더 보장해준다. 이게 스웨덴 식의 공정함이다. 가령, 퇴직연령을 60세로 앞당기면 65세 정상 퇴직급여의 72%를, 70세로 미루고 일을 더 하면 157%를 준다.

"가족이 모셔야 하는 걸 사회가 모시겠다는 것이 기초연금이예요. 이 제도의 도입은 세대 간, 빈부계층 간 사회 합의 없이는 불가능해요. 정파와 이념이 다르더라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선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합니다. "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임성균 기자 tjdrbs23@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임성균 기자 tjdrbs23@

◇양조장 집 딸이 본 복지국가=그는 "복지국가란 공정한 삶을 살게 해주는 국가"라고 말했다. 공정함이란 노력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공정함'은 스웨덴 복지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다. 그 뿌리를 더 짚고 내려가면 공정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스웨덴 문화가 있다.

그가 1990년대 초 스톡홀름광역시 전문위원 시절 겪었던 일이다. 상관, 동료들과 덴마크로 2박3일 워크숍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입국장에 공무원이 불법입국자를 찾느라 서 있었다. 그제야 그는 여권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덴마크와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들은 여권 없이 통행할 수 있기에 방심했던 것이다.

얼굴색이 다른 그에게 입국심사자가 여권을 요구할 게 분명할 터였다. 난감해하는 그에게 동료들이 "방법이 있어"라며 양쪽에서 그의 팔짱을 꼭 끼고 걸어갔다. 그가 스웨덴 공무원인 걸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업무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그는 여권 없이 입국장을 무사통과했다.

"배려는 도와주는 것이 아니에요.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에요.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열등의식을 만듭니다. 도움이 필요 없도록 차별을 만들지 않는 것이 선진복지국가입니다."

어릴 적 그가 살던 경기도 마석의 양조장 집은 작은 복지국가였다. 남편 대신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의 모친은 대문 안으로 아픈 이가 들어오면 의사가 됐고, 고민 있는 사람이 들어오면 상담사가 됐다. 모친은 배고픈 나병환자를 자신의 1남2녀와 함께 밥상머리에 앉게 했다. 그 문 안에 차별은 없었다.

"우리 집안 얘기, 너무 강조하지 마세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으니 그러지, 할까봐 그래요. 저는 우리 어머니 같은 역할을 사회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웨덴이 자국을 '국민의 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현장으로 '가라, 보라, 행동하라'=앞으로 그의 목표는 장애인 여성 성 추행 등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자상하게'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상하게'가 어떤 것이냐 물으니 '자세하게'를 잘못 말한 것이라며 웃었다.

어쩌면 남의 고통을 자세하게 조사하는 것 자체가 '자상'한 일일 것이다. 1969년 이화여대 재학 시절, 그는 친구들과 '파워'라는 서클을 만들어 철거민 등 도시빈민의 연대를 이끌어냈다. 공덕동 철거민들과 함께 법정투쟁을 벌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삶의 스승이던 고(故) 오재식 크리스찬아카데미 사회교육원장은 현장으로 가서 봐야 제대로 행동할 수 있다며 후학들에게 "가라, 보라, 행동하라'라고 했다. 사회운동 조직의 대가인 S. D. 알렌스키의 말이었다. 이제는 신 대표가 퍼트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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