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디자이너열전]<21>주식회사를 직원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해피브릿지 창업자들
-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회사를 주당 10만 원으로 성장시켜 직원들과 공유
- 흑자 상태에서 소유주가 직원으로 바뀐 국내 최초 사례
- '다르게 벌어 다르게 살자'던 16년 전 약속 지킨 창업멤버들
- 주식 내놓은 대신 '내가 평생 다닐 좋은 직장, 서로 기댈 수 있는 좋은 동료' 얻어

톨스토이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땅은 모두의 것"이라며 농민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만들게 하고 자신이 물려받은 농지를 내준다.
만약 자신이 일군 농지였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만든 것에 애정을 갖는다.
여기 본능을 넘어선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창업한 지 8년, 기반 형성 기간까지 합쳐 16년 동안 일군 사업을 '직원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직원들과 공유했다. 프랜차이즈 업체 '해피브릿지'의 창업자들이다.
해피브릿지는 지난해에만 매출 311억9000만 원, 순익 11억7000만 원을 올린 흑자기업이다. 현재 국수나무 300곳, 화평동왕냉면 70곳, 미야오 5곳 등 375곳의 음식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식품유통 등 연관 사업을 영위하는 ㈜해피브릿지씨앤씨· ㈜화평동·㈜MCFC 등 3개 계열사를 합하면 이 기업집단의 전체 매출은 33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까지 쌓은 잉여이익금만 해도 30억여 원이다.
세무법인 다솔은 지난해 기준으로 이 회사의 주식 평가액이 주당 약 10만 여원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액면가가 5000원이니, 창업 후 주당 가치가 20배쯤 높아진 것이다.
실적으로 보든, 자산으로 보든, 알짜인 기업이 직원 협동조합으로 변신한 것은 국내 최초의 사건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으로 문 닫을 지경에 처한 기업을 직원들이 인수한 일은 있었지만 흑자 상태의 기업이 직원 소유로 바뀐 일은 없었다.
해피브릿지의 창업자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창업멤버 6명을 만났다.
◇창업멤버 절반이 이사에서 평조합원으로...소유와 경영 분리=창업멤버 6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시작됐다. 다들 맡은 실무와 회의가 많은 탓이었다. 창업자들은 여전히 현업에서 뛰고 있었다.
해피브릿지가 주식회사이던 시절, 창업멤버 6명이직간접적으로 보유했던 주식을 모두 합하면 68%였다. 멤버 모두 임원이었다. 창업멤버가 돌아가면서 대표 혹은 주요 자리를 맡았다. 이들이 다져놓은 지배구조와 리더십은 탄탄했다.
독자들의 PICK!
그런데 지난달 21일 열린 협동조합 창립총회 자리에서 직원들은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투표로 이사를 뽑는데, 창업자 6명 중 3명이 아예 이사로 출마하지 않았다. 평조합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한성림 전 감사는 평조합원을 택한 후 보직도 맡지 않았다.
반전은 한 번 더 일어났다. 5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평조합원이 사업대표로 선출됐다. 주인공은 창업멤버이자 전 대표이사였던 이구승 조합원. 계열사 화평동 역시 평조합원인 박강태 대표가 계속 맡기로 했다. 협동조합에선 이사가 아닌 평조합원도 사업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송인창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이사장은 "협동조합에서 이사회와 경영진은 역할이 구분된다"며 "이사회는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사업대표 등 경영진은 사업이 잘 되도록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구승 사업대표는 이사 선거 전후의 일화를 전하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3년 전부터 '분명히 협동조합할 거다, 이구승은 다 내려놓을 거다'고 공언했지만 직원들 대부분 그의 말을 반신반의했던 터였다.
"후보 접수 마감 3시간 전엔가? 몇몇이 이사 추천서를 써서 찾아왔어요. 전 정말 출마 안 한다고 했죠. 총회 끝나고도 조합원들이 왜 출마 안했냐고 물었어요. 내가 안한다고 하지 않았냐 했죠. 재밌었어요."
이 대표는 "협동이 일어나려면 주인 된 사람들 사이에 협력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한다"며 "먼저 내놓고 비워야 상대방이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그는 조합원과 이사회가 자신을 선택해주길 기대했기에 먼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았던 것 아닐까.

◇'다르게 벌어 다르게 살자'던 16년 전의 약속=박강태 화평동 대표는 "누군가 한 명이 알박기를 하거나 꼬장 부렸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창업멤버 중 어느 한 명도 사업의 주요 부분을 자신이 독점하려 하거나, 기업 미션의 실현에 딴죽을 걸지 않았단 뜻이다.
함께 주식회사를 설립한 건 2005년이지만 창업멤버들의 '도원결의'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절반은 서울에서 양곡 유통사업, 절반은 대전에서 식자재 유통사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첫 결의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어느 초봄, '이왕 사업하는 거 다르게 벌어 다르게 살아보자'며 술잔을 부딪친 게 전부였다.
그로부터 8년 후 양쪽 그룹이 모여 하나의 주식회사를 설립했을 때엔 기업 미션이 좀 더 구체화됐다. '직원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업'.
주식회사 설립초기엔 직원들을 주주로 참여시켰다. 그런데 회사 규모가 커지고 직원이 늘면서 차츰 주식을 가진 직원의 비율이 줄어들었다. 주식회사라는 형태에선 직원이 기업의 중심이 되기 어려웠다. 송 이사장은 "우리는 협동조합이 우리 미션에 맞는 형태라고 보고 그것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주식회사의 목표는 자본 이익의 실현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합니다. 협동조합의 목표는 조합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거예요. 2011년에 멤버들과 함께 이탈리아 볼로냐에 가서 다양한 협동조합을 둘러보고는 바로 이거다, 했습니다."
◇'칼레파 타 칼라'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지만=모든 창업멤버가 처음부터 '협동조합'이라는 형태에 뜻을 모았던 건 아니었다. 정민섭 해피브릿지씨앤씨 대표는 "좋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니 함께 가기로 한 것이지, 처음엔 협동조합 전환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문제의 핵심이 잉여의 처리에 있어요. 협동조합은 (구조적으로 잉여를 배분한다는 점에서) 그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협동뿐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서도 발전해왔어요. 두 성장동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이게 앞으로 우리 과제에요."
한성림 전 감사 역시 "사업을 할 땐 사람의 이기심이 어느 정도 작용한다"며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사업이 잘 굴러갈 지 걱정되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이문열 소설 제목이기도 한데,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cala)라는 그리스 격언이 있어요.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뜻이에요. 협동조합 전환이나 생산수단의 공유, 모두 좋은 일이죠. 그런데 이것이 결과적으로도 좋은 일이 되려면 다 함께 자기 것을 내놓은 문화가 조합 안에 퍼져야 해요."
그러면 알짜 기업을 직원과 공유해서 창업자들한테 생기는 '좋은 일'은 뭘까. 송 이사장이 말한 '창업 초의 약속을 지켰다'는 만족감? 이 대표가 말한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기업'이라는 자긍심? 문성환 이사가 들었다는 '아버지, 훌륭하십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보람?
이보다는 인터뷰 후 술자리에서 술잔과 함께 오간 말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그럴 듯하게 들렸다.
"우리가 그동안 창업자라고, 주주라고 제대로 된 월급을 가져가질 못했잖아. 와이프가 주식 내놓는다고 불안해했을 때 내가 그랬지. 걱정 마. 후배들이 챙겨줄거야."
"맞아. 이젠 우리도 우리 필요를 밝혀도 돼. 생애주기에 맞는 소득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거야."
"나도! 명분은 협동조합 전환을 통해 채웠으니까 조합원의 한 명으로서 삶의 질을 높일거야."
아마 창업자들은 주식을 내놓은 대신 '내가 평생 다닐 좋은 직장, 서로 기댈 수 있는 좋은 동료'를 얻은 것 같다.
협동조합이란?
"이견 없으시면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의 정관을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협동조합에 헌법이 생긴 겁니다."
송인창 해피브릿지 협동조합 이사장이 정관 통과를 선언하자, 총회장에서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2월 21일 오후 3시, 연 매출 312억 원 규모 중소기업의 주인이 창업주 등 15명의 주주에서 67명의 근속직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규약 승인 과정에서 조항 중 하나에 대해 격론이 오갔다.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표결이 붙었다. 한 제안엔 27명이, 다른 제안엔 25명이 찬성을 표했다. 겨우 2명 차이였다.
그래도 규약이 통과하자 양측이 다 같이 환호했다. 나와는 의견이 달라도 다수결로 모인 의견에 따르겠다는 반대파들의 박수. 총회장은 앞서 가는 민주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국내에선 이보다는 조합원 권익과 지역사회 공헌을 강조한다. 12월 1일부터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을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라고 정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