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남으려면 위험한 이윤을 피해라"

"오래 살아남으려면 위험한 이윤을 피해라"

이경숙 기자
2013.02.16 05:59

[소셜디자이너열전]<20>안병훈 KAIST 경영대학 설립자·명예교수

[편집자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 KAIST 경영대학·그린MBA·사회책임경영센터 설립한 경영과학자

-"자식 세대까지 회사 생각하는 총수들이 한국 기업에 힘이자 짐"

-"비용의 외부화·정보비대칭성·협상력의 불균형에서 얻는 건 위험한 이윤"

↑안병훈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 ⓒ구혜정 기자 photonine@
↑안병훈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 ⓒ구혜정 기자 photonine@

1983년, 원자력발전이 유연탄발전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부지는 경제적 가치가 '0'원이 된다는 요소를 반영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비공개 상태로 스폰서 기업의 캐비닛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1995년, 선진국과 후진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을 만들자는 논문이 해외 학술지에 실렸다. 아프리카·아시아 등 지역별 탄소배출권의 가격을 따로 매기고 선진국에 지역별 배출권을 골고루 사도록 강제해 지구경제의 균형 발전을 이끄는 방안이었다.

2008년, 기업이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기업의 지속성을 높일 것이란 논문이 발표됐다.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란 개념은 자본이 부족했던 산업혁명 시절 생각이며 금융자본이 발달한 현재엔 오히려 단기적 관점의 주주들이 기업의 장기가치를 해칠 수 있다는 요지였다.

사회 비판적인 비정부기구나 독립적 연구기관의 작품들일까? 뜻밖에도 이 연구를 주도한 이는KAIST 경영대학 설립자이자 시장설계로 이름 난 안병훈 KAIST 명예교수(67)였다. 그는 2006년 국제적 싱크탱크 아스펜연구소로부터 기업사회 분야 혁신교수상을 받았다.

스스로 자신을 "시장, 기업 순기능의 신봉자"라고 표현하는 그는 왜 기업이 일으키는 사회·환경 문제에 비판적인 연구를 이끌었을까. 재벌 총수가 줄줄이 법정구속 되고 있는 지금은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지난 13일 오후, 서울 홍릉 근처 KAIST 경영대학에서 그를 만났다.

◇"증시에서 분기마다 한 번씩 얻어 맞다보면 경영진의 시야가 짧아져"=그는 과학적인 경영학자다. 서울대 학사, 미국 스탠퍼드대 석사까지 기계공학을 전공하다가 박사는 경영과학으로 땄다. 그랬던 그가 기업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바보 같은 부작용' 탓이었다.

"시장엔 순기능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바보 같이들 부작용을 내요. 환경파괴 등 비용의 외부화, 지배력 편중,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시장 실패를 야기하는 것이죠. 과거에는 이걸 이윤창출의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안병훈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 ⓒ구혜정 기자 photonine@
↑안병훈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 ⓒ구혜정 기자 photonine@

금융자본주의 폐해도 부작용 중 하나다. 그는 "미국에선 '분기 자본주의'라는 말까지 나왔다"며 "증시에서 분기마다 한 번씩 얻어 맞다보면 경영진의 시야가 짧아지면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건 아담 스미스 시절 얘기"라며 "지금은 정보기술, 금융자본 등 서로 전혀 다른 요소가 얽히고설켜 그냥 두면 시장 실패가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는 시장 실패 못잖게 정부의 실패도 커질 수 있다.

"시장의 순기능이 더 작용하고, 역기능은 줄어들도록 시장을 설계하는 게 의외로 가능해요. 온라인 오픈마켓이 잘 돌아가려면 규칙을 잘 정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에요. 이러면 기업 스스로 역기능을 줄여야 살아남으므로 자정적 진화가 일어납니다."

그는 "착한 이윤은 늘리고 나쁜 이윤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 효율성 향상, 리스크 대응을 잘해서 나오는 이윤은 착한 이윤이다. 회사의 기반을 다진다.

나쁜 이윤은 비용의 외부화, 정보 비대칭성, 협상력의 불균형 같은 시장의 부작용을 이용해 번 돈이다. 긴 시각으로 보면 회사 기반, 나아가 시장과 사회 기반을 갉아먹으니 위험한 이윤이다.

◇"내 기업은 자식한테 물려주겠다"는 생각이 지닌 힘과 한계=한국전쟁 전에 태어나 한국 경제의 발전을 지켜본 그는 "한국 기업들이 그동안 경제 발전의 한 축으로써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세계금융위기 와중에도 견실하게 살아남게 만든 강점이 최근 들어 거꾸로 문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의 장점 중에는 강한 리더십, 장기적 시각이 있습니다. 한국의 재벌 총수는 자식 때까지 회사가 잘 돌아가게 만들려고 합니다. 분기 성과에 집착을 보이는 서양 기업가들과는 기업 가치에 대한 몰입도가 달라요. 덕분에 한국기업들은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었죠."

강점이 약점을 만들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식 대까지 기업을 '법대로' 이어 가자면 상속 재원 마련을 위해 회사 몇 개는 팔아야 한다. 이걸 피하려면 비정상적 재원에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강한 리더십'이 늘 옳은 판단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실수나 오판에 대비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이사회, 특히 사외이사들은 리더를 견제하기 보다는 리더가 발생시킨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실정이다.

"최근 어려운 상황에 빠진 일부 대기업들의 총수들이 회사가 망하게 하려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외국의 전문경영인은 하지 못하는 장기적 시각의 투자를 과감하게 결정했어요. 회사가 잘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균형과 견제였습니다."

◇주인 있는 기업, 시민이 있는 시장 설계해야=그는 "국내 대기업들은 실제 주인(오너 일가)과 법적 주인(주주 및 이해관계자)에 차이가 있다"며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는 진정한 주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총수가 아닐 수도 있다. 워런 버핏, 연기금 같은 장기투자자일 수도 있고 우리사주조합 같은 직원일 수도 있다.

"회사에 진정한 의미의 주인이 없다면, 만들어야 합니다. 해외에선 1년 미만 주주들한텐 의결권 차등을 줘 장기 투자자를 주인으로 맞이합니다. 자본주의가 회생하려면 궁극적으로는 시민사회가 사회적 소비자를 형성해야 합니다."

기업에 진정한 주인이 필요하듯, 시장에도 진정한 주인이 필요하다. 오래,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면 말이다. 이것이 국내 1세대 경영과학자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시민이 있는 시장 설계에 마지막 학문적 열정을 쏟고 있는 이유다.

↑안병훈 명예교수가 자신의 설립한 KAIST 경영대학 앞에 섰다. ⓒ구혜정 기자 photonine@
↑안병훈 명예교수가 자신의 설립한 KAIST 경영대학 앞에 섰다. ⓒ구혜정 기자 photonine@

[팁] KAIST 경영대학 설립한 안병훈 교수는 누구?

"어머, 어떤 멋진 남자가 사진을 찍고 있나 했더니 교수님이셨어요?"

사진기자 앞에 선 안 교수에게 한 교직원이 인사 겸 농담을 던지며 지나갔다. 건물 안 많은 이들이 그를 볼 때마다 목례를 하거나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정년퇴임했지만 KAIST 경영대학 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빛은 여전히 한 식구 보듯 따뜻했다.

대중에게 KAIST 즉 한국과학기술원은 과학기술 분야 수재들이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발사에 성공한 나로과학위성 등 모두 6개의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센터도 KAIST 산하기관이다.

과학기술 중심이던 이곳에서 경영대학을 설립한 이가 바로 안 교수다. 지난해 2월 열린 그의 정년기념 자료에서 그의 제자들은 그가 "국내 경영교육의 새 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KAIST 부총장이자 경영대학장으로서 수많은 '최초'를 도입했다. 1996년 개원한 테크노경영대학원은 국내 최초의 미국식 전일제 MBA다. 경영공학, 금융공학, 정보미디어경영, 그린MBA에 이어 올해 시작된 사회적기업가MBA도 국내 최초였다.

그는 "우리 사회는 기술과 인문사회가 극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21세기 발전 전략을 선도하기 위해선 기술을 아는 경영인, 경영을 아는 기술인을 키워야 했고 그러려면 일반적 경영대학과 같은 걸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KAIST 장기발전전략의 하나로 경영대학 설립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합의해 KAIST가 이전하기 전에 썼던 홍릉캠퍼스에 경영대학을 만들려고 가보니 폐허가 되어 있어요."

그는 정부 돈, 기업 돈 끌어와 지금의 KAIST 경영대학을 만들었다. KAIST의 장대철 교수, 고(故) 이승규 교수 등 23명의 박사와 160여 명의 석사를 키웠다. 이들은 계량, 모델링을 통해 '시장을 설계'하는 안 교수의 방법론을 이어 제각각 독자적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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