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근래 가장 기가 찬 장면을 고르라면 지난해 11월 초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의 공개 파동'을 꼽겠다. 현행 종목당 10억원 이상인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3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정치권 반대에 무산되자 "혼선에 책임을 져야한다"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의를 공개한 일이다.
핵심은 사의 파동의 배경이다. 대주주 양도세 대상 확대는 이미 2018년 2월 국회에서 확정돼 올 4월부터 적용하기로 한 사안이다. 여야는 새 기준 시행 반년여를 앞둔 지난해 9월 국정감사부터 기재부를 압박한다. 코로나19(COVID-19) 같은 초대형 악재에도 주식시장을 떠받친 동학개미를 챙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다.
여야는 대주주 양도세 과세 방식에 문제가 있고 금융투자시장 환경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가족합산 규정이다. 대주주가 아닌지 여부를 보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한 부자지간도 서로 주식계좌를 열어봐야한다는 얘기다. '주식=재벌의 불법상속 수단' 공식에 갖힌 구시대적 계산법이다. 홍 부총리는 이에 3억원 양도세 기준 확대 시 가족합산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주주 양도세 확대 보류와 홍 부총리의 사의 파동 이후 가족합산 규정에 대한 논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내가 대주주 자격으로 주식을 팔아보니 얼마나 불편한줄 아느냐"고 외쳤던 정치인조차도 가족합산 규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주주 기준 '10억원+가족합산 규정'은 슬쩍 살아남았다. 지독한 지지율 근시를 앓고 있는 정치권의 뻔뻔함과 정부의 무기력함이 빚어낸 희비극이다.
사례는 더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2023년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전면과세 방침을 밝히면서 국내주식 투자에 대한 기본공제액은 5000만원으로 정했다. 정부는 당초 기본공제 2000만원으로 설계했지만, "동학개미가 우리 증시를 지켰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크게 기분을 냈다. 동학개미에 대한 이런 배려는 1년이 채 안돼 "왜 해외주식과 비트코인은 250만원만 공제해주느냐"는 반발에 부딪혔다. 부의 쏠림을 막고 사회 균형을 잡기위한 세금이 오히려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를 갈라치는데 쓰여버렸다.
올해 4·7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를 당하고 내년 3월 대선이 다가온다. 지지율에 매몰된 정치권의 행정부 압박은 더 거세지고 있다. 오전에 당정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논의하면 그날 저녁 여당 정치인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부총리 해임건의까지 운운하며 재정당국을 압박한다. 2022년 예정인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 연기론도 공공연히 선거판에 오르내린다. 대주주 기준 확대를 둘러싼 촌극을 다시 한 번 연출할 기세다.
한 관료는 "우리는 내일, 내년을 고민하는데 정치인은 그저 오늘만 바라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영화 대사처럼 오늘만 사는 자는 내일을 사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정부가 정치권에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내일을 살아야 하고 10년, 20년 뒤에도 살아가야 한다. 지금 정치권이 쌓아올리고 있는 유·무형의 청구서는 그때쯤 날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