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의정부 출신 김휘은(36) ABBF 대표에게 전남 강진은 '제2의 고향'이다. 2021년 서울시 도농상생 청년창업 지원사업(넥스트로컬)에 선정돼 연고 없던 강진으로 훌쩍 내려왔다. 김 대표는 조선 시대 전라병영성이 자리했던 병영면의 이야기에 매료돼 이곳에 봇짐을 풀었다. 1400여 명이 사는 전남 강진 병영면은 한적한 마을이지만 그의 눈에는 가능성이 보였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2년째 막걸리 '코리안화이트'와 '하멜맥주'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에 열어 오후 7시면 문을 닫는 조그만한 술집이지만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김 대표는 "맥주와 막걸리 등 술을 만들어 팔다보니 마을 어르신들이 '맥주놈'이라고 부른다"며 "농협 등 마을 가게에도 제품을 유통해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가 주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애주가인 그는 술을 향한 애정 하나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 대표는 "어머니가 옷 장사를 하시는데, 옷을 파시다보니 의류에 지출하는 비용이 없었다"며 "나는 돈을 어디서 제일 많이 쓰는지 고민해보니까 술 마시는데 가장 많이 썼다. 술을 업으로 삼으면 너무 좋겠다고 해서 주류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사업에 발을 들이며 계시같은 꿈을 꾸기도 했다. 그는 "꿈 속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큰 구멍 안에 탱크가 보였다"며 "한눈에 아주 커다란 술 탱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법인명을 '아주 커다란 발효기(A Big Big Fermente)'의 약자인 ABBF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술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문화'라는 점에 착안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크래프트 맥주에는 저마다의 개성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술에 녹여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크래프트 회사인 브루독은 러시아의 반(反) 동성애 법에 항의하는 의미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조롱하는 맥주를 만들었다. 맥주 레이블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스타일을 차용한 푸틴의 초상을 넣었다. 맥주 한 상자를 푸틴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크래프트 정신 중에 하나는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것"이라며 "시장 논리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메시지를 주는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 전통주인 막걸리도 와인처럼 색채를 잘 입히면 다양하게 만들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유통망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 대표는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혁신 아이디어 확산 사업자로 선정돼 사업화 자금을 지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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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진에서 생산되는 쌀 새청무에 이끌려 막걸리 '코리안화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전남을 대표하는 쌀인 새청무는 쫀득한 식감을 자랑한다. 우수한 도정률로 공급이 안정적이라 가격이 적당한 것도 장점이다. 그는 쌀이 주재료인 막걸리를 데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강진의 특산품을 녹여낸 막걸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봤다.
그는 "탁주라는 개념이 한국에서 명확하게 잡혀 있지 않다. 막걸리를 제조법이 다양하고 종류와 스타일도 여러 가지이지만 잘 드러나지 않은 면이 있다"며 "천편일률적인 막걸리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걸리를 스탠다드화 하자는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코리안화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캔에 담긴 막걸리라는 점이다. 막걸리라는 술을 무겁지 않게 판매할 수 있도록 병이 아닌 캔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주력 시장은 한국식 술이 익숙한 일본이다. 강진의 쌀을 바탕으로 만든 술에 이어서 딸기, 매실, 쌀 귀리 등 지역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을 활용하고 있다. 블루베리와 꿀 등 강진에서 생산한 또 다른 농산물을 활용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또 다른 주력 상품인 '하멜맥주'에도 강진의 스토리가 담겨있다. 하멜맥주에는 병명면이 조선시대에 네덜란드인 하멜이 7년간 머물렀던 마을이라는 스토리가 담겼다. 강진의 특산물인 쌀귀리를 활용해 라거와 IPA 형태로 제작된다. 라거는 청량감이 장점이고 IPA는 독특한 향과 씁쓸한 맛이 특징이다. 올해 2월부터 총 1만2000병을 판매했다.
지난해부턴 술과 문화를 연계한 영화제도 개최했다. 관광객들은 술을 찾으려면 지역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작년 10월 전라병영성 터 안에서 열린 제1회 ABBFF 병영영화제에는 총 16명의 영화 예술가가 참석했다. 올해 9월엔 두 번째 영화제를 열었다. 영화를 상영하면서 주류와 음악 공연을 곁들여 관광객들을 사로잡았다. 지난해에는 40여명, 올해는 그보다 3배가 늘어 150명이 모였다.
김휘은 대표는 "술만으로는 대기업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 강진이라는 곳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병영성을 활용해 맥주·먹걸리와 좋은 경험을 함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려 한다"며 "주류와 함께 영화, 음악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강진군의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자리를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