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기재부의 나라

[우보세]기재부의 나라

세종=정현수 기자
2025.11.11 04:3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우연은 필연의 그림자다. 올해 말 간판을 내리는 기획재정부를 보며 7년 전 우연을 떠올렸다.

기재부는 2018년 8월 영문 명칭을 '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에서 'Ministry of Economy and Finance'로 바꿨다. 전략(Strategy)을 버리고 경제(Economy)를 택했다.

2008년 기재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경제정책의 수립, 기획, 조정, 총괄에 방점을 찍겠다며 'Strategy'를 썼지만, 주요국 재무부에선 잘 쓰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우연히도' 이 무렵부터 기재부는 흔들렸다.

2018년은 대통령실과 기재부 사이의 불협화음이 나오던 시기다. 최저임금을 두고 이견을 보였고 갈등 양상으로 번졌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논쟁까지 불거졌다.

그 해 말에는 한 사무관의 폭로가 있었다. 적자 국채 발행 강요 등의 의혹이 기재부를 휩쓸고 갔다. '기재부의 나라'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도 2020년이다.

팬데믹은 또 다른 변곡점이었다. 재정의 파수꾼 역할을 외면하는 건 기재부로선 배임이었다. 하지만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에선 돈을 쓸 때 제대로 쓰지 않는 기재부가 배임을 하고 있다고 봤다.

누군가는 기재부가 검찰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고 했다. 권한과 권력의 관계는 언제나 흐릿하다. '모피아'로 대표되는 기재부의 세력화를 우려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기재부를 향한 시선은 견제에서 배제로 바뀌었다.

이 모든 일을 영문 명칭에서 시작된 '나비 효과'로 보지 않는다. 우연이 겹쳤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우연은 필연의 그늘 속에 있다. 기재부의 해체라는 필연을 쫓아가다 보면 '전략' 혹은 '기획'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정부조직법 상 기재부의 최우선 업무는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이다. 기재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때도 비슷한 문구가 정부조직법의 가장 앞에 있었다.

기재부는 사실상 이를 외면했다. 정권의 5년 주기는 긴 호흡과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예산과 세제 같은 단기 정책 수단에 힘이 실렸다. 예산과 세제라는 정책 수단에 의존한 기획, 조정은 파편적이었다. '기재부다운' 정책이 아쉬웠다.

기재부는 어느덧 당면한 과제, 즉 '미션'(To-do)에 익숙한 조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예산은 훌륭한 무기였다. 그 과정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경제정책의 방향을 그리는 '비전'(To-be)은 잘 보이지 않았다. 보이더라도 잠깐 스쳐 갔다.

이제 곧 기재부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쪼개진다. 기재부 해체의 또 다른 원인을 긴 호흡을 가진 경제정책 전략과 기획의 부재에서 찾고 싶다. 예산에 의존한 기재부의 권한은 권력으로 읽혔고, 엘리트 관료의 실력은 폄하됐다.

기재부 조직이 바뀌지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조직의 실력도 의심하지 않는다. 마땅한 수단이 없어도 전략과 기획으로 경제정책을 이끌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 조정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날을 향해 새로운 옷깃을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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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 정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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