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규제, 기업 총수의 족쇄] 종합

#.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최대 이슈는 쿠팡의 동일인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의 동일인을 기존 쿠팡 법인에서 김범석 쿠팡Inc 의장으로 변경했다. 쿠팡은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동일인 지정에 따른 부담 탓이다.
#. 공정위는 올해 김준기 DB그룹 회장과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기업집단이 매년 공정위에 제출하는 지정자료 중 계열사를 허위로 제출했다는 혐의다. 3명의 공통점은 기업집단의 동일인이라는 점이다.
쿠팡 사례와 공정위 고발 건은 동일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지정을 피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의무를 피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제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쿠팡이 그렇게 피하고 싶은 '동일인'이 뭐길래
동일인 제도가 도입된 건 1987년이다.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듬해 대기업집단 규제와 함께 동일인 제도가 시행됐다.
동일인은 대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사람) 혹은 법인을 의미한다. 공정위는 매년 공시대상기업집단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대기업집단을 지정하는데 그 준거점이 동일인이다. 동일인이 정해져야 기업집단의 범위도 정해진다.
대기업집단과 동일인을 지정한 목적은 재벌의 경제적 집중과 불공정거래 행위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초창기 동일인에 대한 논란도 크지 않았다. 실제로 재벌을 지배하는 '회장님'들이 동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동일인을 지금도 총수로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재벌 3·4세로 경영권이 넘어갔거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가 적지 않자 동일인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뤄졌다.
재계를 중심으로 나온 문제제기는 동일인 제도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점이다. 기업들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의견, 동일인 제도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 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이 같은 문제제기의 배경에는 동일인에 대한 책임과 처벌 조항 등이 과도하다는 인식이 있다. 공정위는 매년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동일인으로부터 계열회사와 친족, 임원, 계열사 주주, 비영리법인 현황 등의 자료와 감사보고서를 제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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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 확산, 가족관념 변화, 외국인 총수 등장…동일인 제도 개편 목소리↑
이 과정에서 지정자료 허위 제출 등의 혐의가 발견되면 검찰 고발이 이뤄진다. 특히 친족 범위를 두고선 재계의 불만이 많다.
공정위는 2022년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고쳐서 친족의 범위를 기존 '혈족 6촌 이내, 인척 4촌 이내'에서 '혈족 4촌 이내, 인척 3촌 이내'로 축소했다. 하지만 가족의 유대가 약해진 상황에서 이마저도 친족의 범위가 넓다는 지적이다.
동일인이 법인인 경우도 있다. 올해 102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중에서 법인이 동일인인 곳은 12개다. 포스코, 농협, 케이티 등 개인이 소유하지 않은 곳이나 두나무 등 예외 조항을 인정받은 곳들이다. 쿠팡도 지난해까진 예외를 인정받았다.
자연인이 동일인이 될 경우 법인일 때보다 규제는 더 강화된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 즉 사익편취 행위 규제가 적용되는 대기업집단은 동일인이 자연인인 경우로 한정된다.
기업집단 현황 등에 대한 공시 의무도 생긴다. 대상은 동일인과 특수관계인 등이 20% 이상 소유한 국외 계열사의 주주 구성 등이다.
동일인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단순히 책임과 처벌 등 부담 때문은 아니다. 학계에서도 지주회사 확산, 가족 관념 변화, 외국인 총수 등장 등 자연인 중심의 동일인 제도의 실효성이 약해졌다고 보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어디에도 총수라는 개념을 법적으로 규정해 친족의 거래까지 일일이 공시하고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며 "동일인 지정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흔히 대기업집단의 총수로 불리는 동일인을 두고서 개편 논의가 이뤄진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두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 전문가들은 동일인 제도의 근본적인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일인 제도는 자연인 총수 한 명이 기업 전체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제도"라며 "그 사이 국내·외적으로 경제여건이나 기업 현실이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가족 관념이 달라져서 친인척 중 외국인인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자료 제출 의무가 생기는데 협조가 안되는 경우도 많다"며 "동일인 규제를 푼다기 보다는 드러난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법인 중심의 동일인 제도를 제안한다.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102개 기업집단 중에서 법인이 동일인인 곳은 12개다. 나머지는 자연인(사람)이 동일인이다.
쿠팡의 경우에도 지난해까지는 법인이 동일인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정하고 있는 예외조항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정부가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예외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일인 제도는 기업인을 추적해서 처벌하는 목적이 아니고, 어떤 한 사람의 지배력 범위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하지만 국내에서 사업하는 기업에 대한 통제수단이 돼 버렸다"고 밝혔다.
이어 "법인을 중심으로 동일인을 지정해도 단일한 지배 체제 하에 있는 기업집단을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다"며 "잘못된 걸 억제하는 건 맞지만, 지나치게 강한 방망이를 휘둘러 필요 이상으로 기업 행위를 억제하고 위축시키는 제도 자체에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동일인이라는 사람을 타깃으로 규제하다 보니, 사람이 잠재적인 범죄자가 되는 것"이라며 "현대적인 지배구조 흐름과 맞추기 위해선 개인보단 법인을 중심으로 거래 관계를 파악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일인 제도는 40년 동안 충분히 역할을 했지만 변화를 모색할 때"라며 "법인 동일인 지정의 물꼬를 텄으니 그걸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와 지방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02.04. bjko@newsis.com /사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5/2026050215092684660_4.jpg)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 즉 총수를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는 만들어진지 40년이 됐다. 경제계는 강산이 4번 바뀌는 동안 우리나라 경제환경도 완전히 달라진 만큼 이제는 없어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김범석 쿠팡Inc 의장에 대한 동일인 지정으로 논란이 재점화됐지만 이와 별개로 진작에 없어져야할 낡은 규제였다는 입장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동일인 지정제도 자체가 오늘날 경제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본다. 해당 법은 1986년 국회에서 통과됐다. 당시 우리나라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102조9858억원이었고 현재(2025년 잠정치)는 2663조원이다.
재계 관계자는 "1980년대처럼 국가 경제의 국제적 개방도가 높지 않고 기업규모도 크지 않은 경우에는 유효하게 작동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경제 규모가 26배 성장했고 국제교역이 활발한 개방경제로 변화했다"며 "특히 IT(정보기술) 기반의 새로운 사업형태를 갖고 있는 기업집단이 출현하면서 동일인 지정에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투자가 활발해짐에 따라 외국 국적을 가진 동일인 지정문제가 생기고 여기에 따른 실효성 문제, 국제 규범과 충돌 논란도 발생한다는 우려다. 예컨대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의 기업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FTA 협정상 최혜국 대우 조항에 위반 소지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동일인이 계열사 신고를 누락할 경우 형사처벌(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등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비판도 계속돼왔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지주회사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등 법인만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동일인 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게 재계의 일관된 요구다.
또 공정위가 관례상 자연인인 동일인에게 매년 특수관계인 등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요청해온 것도 문제로 꼽힌다. 민간인으로서 강제조사권도 없는 동일인이 특수관계인의 개인적 투자내역까지 모두 확인해 보고토록 하고 어길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이다.
A기업 관계자는 "동일인의 친척은 3~4대로 넘어갈수록 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이 자료제출 요구를 거절하는 등 실무상 애로가 상당하다"며 "강제권한이 없는 동일인에게 관련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형벌의 책임주의 원칙'(책임이 없으면 형벌이 없다는 원칙)에 위반한다"고 밝혔다.
재계는 기업집단의 대표 법인이 지정자료를 제출하도록 변경하고 대표 법인이 파악하기 어려운 대주주 친족 등의 소유 회사는 공정위가 직접 해당 관련자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친족의 범위도 논란이다. 요즘은 과거보다 친인척끼리 교류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행 '혈족 4촌 이내, 인척 3촌 이내'를 직계가족으로 축소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기타 친족'으로 정의돼 있는 '혈족 5촌·6촌과 인척 4촌'도 걸림돌이다. 동일인의 지배력 보조 요건을 충족하면, 즉 기타 친족이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의 발행 주식총수 1%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경우 기타 친족도 친족 범위에 포함되는데 이를 확인하려면 일일이 조사해야하는 탓이다.
B기업 관계자는 "5촌·6촌 등의 주식보유 여부, 채무보증과 자금대차 사실 등을 파악하는 일은 기업에 큰 부담"이라며 "'기타 친족'은 일률적으로 동일인 관련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