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찾아 도시·해외로 떠나는 청년들…한·네팔 학생, 농업에서 새로운 가능성 탐색
-생산을 넘어 가공·브랜드·기술·관광·창업으로…'청년 농업비즈니스 툴킷' 공동 제작

네팔, 그곳은 히말라야의 땅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산맥과 깊은 계곡 사이로 마을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산비탈에 옥수수와 채소를 심고, 평야에서는 벼와 밀을 기른다. 농업은 오랜 세월 먹거리이자 일자리였고, 공동체를 이어주는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삶의 터전에서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 농촌을 떠나 수도 카트만두로 향하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다.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네팔 인구의 7% 이상이 취업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고, 상당수는 젊은 남성이었다. 해외 노동자의 송금은 2024년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26%에 달했다.
네팔이 자국 청년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농촌의 미래를 이어갈 사람은 줄어드는데, 농업은 앞으로 누가 지킬 것인가.' 지난 8일 한국 대학생들이 이 질문을 안고 네팔을 찾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력연락사무소는 네팔사무소와 함께 카트만두와 인근 농촌·산간지역에서 지난 8~16일 '2026 한국-네팔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양국 학생들은 현지 대학과 농업기업, 시장과 농촌마을을 찾아 지속가능한 농업과 청년 창업의 가능성을 살폈다.
한국조지메이슨대 배수현(20·국제학과2년) 학생은 일주일간의 여정을 "농업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지역의 미래를 마주하고, 현장의 목소리에서 국제협력의 방향을 배운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학생들이 찾아간 첫 번째 장소는 양봉가공업체 히마이다 네팔(Himaida Nepal)이었다. 창업자 산자이 카플레(Sanjay Kafle)씨는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뒤 스물세 살 무렵까지 배낭 하나를 메고 네팔 55개 지역을 누볐다.
특히 구름과 계곡 사이, 깎아지른 히말라야 절벽에 몸 하나 의지한 채 꿀을 채취하는 '허니 헌터(Honey Hunter)'를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허니 헌터의 삶을 담은 이야기와 꿀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은 '그 꿀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평범한 질문 하나가 새로운 사업의 씨앗이 됐다. 2018년 첫 제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여행가는 창업가가 됐다.



히말라야농업과학기술대(HICAST) 요자나(22·농학과 4년) 학생은 "농업은 전통적인 농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기술과 지식, 아이디어가 결합되면 비즈니스와 부가가치, 창업의 기회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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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함께 만든 '청년 농업비즈니스 창업 가이드라인(Youth Agribusiness Toolkit)'도 이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개인의 관심과 능력을 살펴 농식품 가치사슬에서 사업 기회를 찾은 뒤 자금·기술·시장정보·멘토링 등을 점검해 자신에게 맞는 모델을 고르도록 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 지역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보고, 확인했다.
학생들은 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온라인으로 네팔의 농식품 시스템과 창업사례를 공부한 뒤 현장에서 농민과 청년 창업가, 지역 주민을 만났다.


한국 학생들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질문했고, 네팔 학생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농촌과 청년의 현실을 설명했다. 한국조지메이슨대 신다연(23·국제학과 3년) 학생은 "문화와 문제를 보는 방식이 달랐지만 오히려 그 차이가 팀워크의 강점이 됐다"고 말했다.
여정의 끝은 해발 1600m 고지에 위치한 농촌마을 홈스테이(Homestay) 였다. 카트만두 도심을 벗어나 카스레 구룽 마을(Khasre Gurung Gaun) 까지 차로 2시간 30분이 걸렸다. 굽이진 산길 도로를 오를수록 집은 뜸해졌고, 경사진 산비탈에는 옥수수밭이 층층이 이어졌다.
저녁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 주민들은 밭에서 거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맞았다. 번듯한 관광시설은 없었지만 농업과 음식, 자연, 구룽족의 문화와 공동체가 하나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곳에서 농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것이 반드시 번듯한 시설이나 기술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직접 확인했다.
이미 그곳에 있는 농산물과 음식, 자연과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가치가 생겨났다. 산골마을의 꿀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것도 결국 지역의 자원과 이야기를 연결한 결과였다.
청년이 떠나는 현실과 농업의 위기는 결국 하나의 문제로 이어져 있었다. 청년을 붙잡는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여기서 해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를 만드는 일이었다.
농업이 힘든 노동의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술, 꿈을 시험할 수 있는 산업으로 바꾸는 것. 청년을 농촌에 머물게 하는 힘은 바로 그런 가능성에서 나왔다.

히말라야의 산길을 따라 오늘도 많은 청년이 도시로, 또 다른 나라로 향한다. 그들의 발걸음을 억지로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 고향의 들판에서 '낡은 농업'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로 바꿀 수 있는 미래를 발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한국과 네팔의 청년들이 일주일 동안 현장을 누비며 찾은 답은 분명했다. 농업은 여전히 청년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와 인력 부족에 직면한 한국 농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