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파일럿' 이어 여름극장가선 무적의 사나이

또 조정석이다. 통상 K-팝 시장에서 걸그룹들이 ‘서머 퀸’(summer queen)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데, K-영화 시장에서는 조정석이 압도적인 ‘서머 킹’(summer king)이다.
조정석이 주연을 맡은 영화 ‘좀비딸’이 개봉 첫 날인 30일 43만여 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올해 개봉된 국·내외 영화를 통틀어 최고 오프닝 성적이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42만3892명) 마저 뛰어넘었다.
여름 휴가 시간은 극장가 최고 성수기로 분류된다. 올해는 ‘좀비딸’을 비롯해 ‘전지적 독자 시점’, ‘악마가 이사왔다’ 가 자웅을 겨룬다. 하지만 ‘좀비딸’이 이미 멀찌감치 앞서 가는 모양새다. 이 영화가 개봉 당일 정부의 할인 쿠폰 효과와 문화가 있는 날 효과를 봤다는 분석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좀비딸’이 아니라 현재 상영되는 모든 영화에 해당된다. 즉 ‘좀비딸’이 유독 더 큰 수혜를 누렸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줬다는 뜻이다.
‘좀비딸’은 개봉 2일차에도 24만 명을 동원하며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2위인 ‘F1 더 무비’(7만4693명)과도 격차가 크다. 게다가 경쟁작으로 손꼽히던 ‘전지적 독자 시점’(3만1115명)의 순위는 5위까지 하락했다. 8월초 개봉되는 신작 ‘악마가 이사왔다’가 제동을 걸지 못하면 ‘좀비딸’이 올 여름 ‘1강’ 체제를 구축할 것이 자명하다.

그 중심에는 조정석이 있다. 그는 2019년 이후 ‘여름 사나이’로 거듭났다. 그 해 개봉된 영화 ‘엑시트’로 942만 관객을 모았다. 비슷한 시기 공개됐던 ‘봉오동 전투’(478만 명)도 큰 격차로 밀어냈다.
그 직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벌어졌다. 극장으로 가는 발길이 뚝 끊겼다. 2018년작인 ‘신과 함께-인과 연’(1227만 명) 이후 여름 극장가에서 1000만 영화는 사라졌다. 통상 500만 명 안팎의 영화가 최종 승자가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조정석이 다시 나타났다. 영화 ‘파일럿’으로 470만 관객을 모으며 2014년 여름 극장가를 석권했다. 또 다른 한국 영화 ‘사랑의 하츄핑’이 114만 명을 동원한 것을 고려할 때, 조정석의 위력은 더 빛을 발한다.
그리고 이제 ‘좀비딸’이다 . ‘엑시트’부터 ‘파일럿’, ‘좀비딸’은 조정석표 코미디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그는 타고난 코믹 연기를 보여왔다. 출세작인 ‘건축학개론’에서 보여준 ‘납득이’가 시작이었다. 키스에 대해 설명하며 온 몸을 배배 꼬던 슬랩스틱은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이후에도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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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표 코미디의 또 다른 특징은 가족애다. 조정석은 B급 감성이나 성인 코미디는 지양한다. 억지 웃음보다는 일상 속에서 유발되는 자연스러운 코미디를 선호한다. 이런 작품이 조정석에서 러브콜을 보내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조정석이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엑시트’부터 ‘파일럿’에 이르기까지 가족은 그를 둘러싼 주요 키워드였다. ‘좀비딸’은 이 부분이 더 극대화됐다. 좀비가 된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이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준다. 이 때문에 "신파로 끝난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성공한 신파는 비판받지 않는다. 과장되지 않은 연기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조정석 특유의 완급 조절이 ‘좀비딸’에서 빛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성비’다. 최근 극장가의 파이는 크게 줄어들었다. 3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손익분기점은 약 600만 명이다. 최근 극장 수요를 고려할 때 쉽지 않은 목표치다.
조정석은 보다 현실적인 손익분기점을 계산한 작품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엑시트’의 손익분기점은 350만 명이었고, 개봉한 지 불과 7일 만에 달성했다. 지난해 ‘파일럿’의 손익분기점은 220만 명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보다 2배를 웃도는 최종 성적을 기록했다. 제작비 약 110억 원이 투입된 ‘좀비딸’의 손익분기점 역시 220만 명이다. 이틀 만에 약 70만 명을 모은 ‘좀비딸’은 이르면 이번 주말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관객들이 영화 한 편 정도를 극장에서 선택하는 ‘쏠림 현상’을 고려할 때 ‘파일럿’의 성적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좀비딸’은 ‘파일럿’의 오프닝(37만여 명)도 넘어서며 몇 발 더 앞서 나가는 모양새다.
향후 조정석의 몸값은 천정부지 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름 조정석=흥행’이라는 공식이 ‘좀비딸’을 통해 하나의 명제가 될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