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전개에 케미 안사는 러브라인으로 시청자 탈출각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성 평가가 아니라 정량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 이준호가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태풍상사’의 뒷심이 아쉽다.
이 드라마는 지난 10월11일, 시청률 5.9%로 출발한 후 내리 상승 곡선을 그리며 9%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후 흐름은 제자리걸음이다. 7∼9% 박스권에 갇혔다. 물론 최근 대다수 드라마의 시청률이 5% 아래 머문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훌륭한 수치다. 하지만 12회가 9.9%로 최고 수치를 기록한 이후 이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통상 결말에 다다르는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률 상승 탄력성이 강하지만 ‘태풍상사’는 아쉬운 뒷맛을 남기고 있다. 이대로라면, 태풍으로 시작해 미풍으로 끝났다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태풍상사’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방송 초반부터 눈길을 끌었다. 국제구제금융의 지원을 받던 ‘IMF’ 시대를 배경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상사를 물려받은 ‘오렌지족’ 아들이 개과천선 후 회사를 되살려가는 과정을 밀도높게 그렸다. 오렌지족 아들의 방탕한 생활부터, IMF로 인해 실직한 이들의 삶이 디테일하게 그려지며 다양한 세대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왜일까?

일단 이야기가 반복적이다. 초반부 ‘태풍상사’는 사업의 기본을 모르던 주인공 강태풍(이준호)이 패기 하나로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박수를 받았다. 선적 물량을 보관할 창고를 확보하지 못하자 빈 주차장에서 원단을 놓고,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지 못해 어렵게 확보한 원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과정은 초보 사업가가 행할 수 있는 기지와 범할 수 있는 실수로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기계적으로 이어붙이니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무언가 잘 풀릴 때쯤 되면 어김없이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긴 호흡의 이야기는 힘을 얻지 못한 채, 옴니버스성으로 단계를 하나씩 깨나가는 구도다.
강태풍과 오미선(김민하)의 러브스토리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시작은 꽤 괜찮았다. 상사맨이 되고 싶은 포부를 가진 경리 직원인 오미선에게 강태풍은 정식 직원으로서 자신감을 부여했고, 다양한 경험을 갖춘 오미선은 초보 사장인 강태풍을 성실히 보좌했다. 불가능할 것 같은 문제를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는 과정은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 사이의 화학 작용은 기대를 밑돈다.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로맨스 서사를 강조하면서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는 반응도 있다. 로맨스가 ‘거드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주요 줄거리를 침해하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답답한 상황을 계속 부여하는 것도 드라마 흐름의 발목을 잡는다.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난데없는 요철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분이다. 믿었던 차선택(김재화)의 부정 행위가 드러나고, 한숨 돌리던 찰나 이번에는 잠시 전화를 받고 들어온 송중이 눈물을 쏟으며 "우리 아빠가 죽는대요.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사족’에 가깝다. ‘태풍상사’라는 이름처럼 큰 줄기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태풍처럼 몰아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계속 겉도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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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각을 세우던 강태풍과 표박호(김상호) 사이 ‘차용증의 진실’도 점차 그 힘을 잃는 모양새다. 부도 위기를 피하기 위해 표박호는 강태풍의 아버지인 강진영(성동일)에게 4000만 원을 빌리는 대가로 회사 지분 30%를 양도하는 차용증을 썼다. 이 차용증은 태풍상사를 부활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키다. 하지만 강태풍은 차용증을 찾지 못해 계속 표류하고, 강태풍과 표상선 간의 계약이 표상선의 실종으로 인해 파기된 것인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빌런의 존재감도 부족하다. 표박호의 아들인 표현준(무진성)은 방송이 진행되는 내내 강태풍을 시기, 질투하고 방해했다. 하지만 통하지도 않는 잽만 날리며 깐족대는 수준이다. 강태풍을 무너뜨리기 위한 진지한 전략도, 전술도 없다. 성공한 드라마에는 통상 매력적인 악역이 존재한다. 그래야 주인공의 서사도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준에게는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지난 방송에선 갑자기 아버지를 공격하는 존속폭행까지 저질러 시청자에게 불쾌감까지 선사했다.

하지만 아직 2회가 남았다. 반등의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꿰어야 할 구슬이 너무 많다. 강태풍과 표박호 그리고 표현준의 싸움, 강태풍과 오미선의 로맨스, 태풍의 친구 왕남모(김민석)와 미선의 동생 오미호(권한솔)의 로맨스 등이다. 태풍상사 식구들의 이야기도 매듭지어줘야 한다. 아버지가 일군 태풍상사를 온전히 살리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식구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문제는 개연성과 필력이다. 이런 ‘떡밥’을 수거해야 한다는 것은 그동안 ‘태풍상사’를 지켜보던 모든 시청자들이 알고 있다. 만약 진부한 공식대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면 ‘용두사미 드라마가 될 위기’에게 ‘용두사미 드라마의 완성’으로 섭섭한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