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셔로’ 가난이 조롱 받는 시대, 이준호가 날리는 현금 펀치

‘캐셔로’ 가난이 조롱 받는 시대, 이준호가 날리는 현금 펀치

권구현(칼럼니스트) 기자
2025.12.30 08:00
최근 SNS에서 유행한 가난 밈이 논란이 되었다. 네팔과 필리핀의 고위층 자녀들이 부를 과시한 후 반정부 시위로 이어진 사례를 고려할 때, 가난을 웃음으로 소비하는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반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캐셔로의 강상웅은 초능력을 가졌지만 돈이 없어 궁핍한 삶을 사는 흙수저 공무원으로, 돈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고찰을 담은 작품이다.
'캐셔로'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캐셔로'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최근 ‘가난 밈’이 SNS에서 유행하면서 논란이 됐다. “지긋지긋한 가난”이라 말하면서, 비행기 일등석이나 고급 외제차, 명품 인증샷을 업로드하는 일종의 반전 개그였다. 누군가는 재미였고, 누군가는 관심을 구하는 행동이었지만, 누군가에겐 기만이었고, 누군가에겐 조롱이 됐다. 지난 9월 네팔과 필리핀의 고위층 자녀들이 SNS에 부를 과시한 이래 결국 반정부 시위까지 이어진 것에 비춰보면 결코 가벼운 장난으로 치부할 사회 현상은 아니다.

돈은 생존의 수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이란 모두에게 가혹한 고난이자 시련이다. 먹고, 입고, 주거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이 사회의 수많은 갈등이 돈에서 시작된다. 이미 돈 때문에 생명이 위협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기에 가난을 웃음으로 소비하는 건 인간의 삶을 재산이라는 잣대로 비웃는 일이다. ‘가난 밈’에 대한 논란은 결국 돈의 가치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시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종과 같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캐셔로’의 ‘강상웅’(이준호)는 흙수저 공무원이다. 딱히 부모에게 커다란 유산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초능력을 물려 받는다. 허나 이 능력을 사용하려면 현금이 필요했다. 그마저도 힘을 쓰고 나면 그 돈이 사라져버린다. 부자에게는 초능력이지만, 빈자에게는 무능력이다. 가뜩이나 현생에 치여 사는 강상웅에게 초능력이란 세습된 궁핍이자 빈곤을 향한 굴레나 다름없었다.

'캐셔로'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캐셔로'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하여 ‘캐셔로’의 시작은 한없이 암울하다. 작품의 겉옷만 보고 호쾌한 히어로물을 기대했던 시청자에겐 명백한 진입장벽이다. 능력을 얻은 상웅은 끝없이 고민한다.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주머니 사정에 힘든 이를 외면한다.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기에 자신의 현실에 더욱 좌절하는 상웅이다. 그 고민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편하지 않다.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자금 상황에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감상이다.

하지만 상웅은 강했다. 상웅에겐 돈 보다 중요한 여자친구 ‘김민숙’(김혜준)과 가족, 그리고 초능력자 동료 ‘변호인’(김병철), ‘방은미’(김향기)가 있었다. 점차 히어로의 구색을 갖춰가는 상웅과 함께 ‘캐셔로’의 장르적 재미도 속도를 높인다. 히어로가 품은 힘에 대한 고찰, 가족의 안위, 개인 이익과 사회 정의 사이의 고뇌, 동료애, 빌런과 갈등 등 정형화된 영웅 서사 위에 적절한 액션까지, ‘캐셔로’는 한국형 히어로의 탄생을 알린다.

‘캐셔로’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돈’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러니다. 돈에 대한 고찰로 시작하고, 돈이 없어 고통 받는다. 히어로에겐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외치지만, 끝내 빌런을 무찌르기 위해서 돈을 갈구한다. 작품은 결국 돈의 서사 위에 서있고, 작품을 만드는데 막대한 자본이 들어갔으며, ‘캐셔로’를 즐기기 위해선 넷플릭스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이 돈의 논리로 돌아간다.

'캐셔로'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캐셔로'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작품 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이준호의 내레이션은 초능력이 아닌 돈능력을 빌어 사는 우리 인생의 고민이자, 절규다. 힘을 쓸 때 마다 바스러지는 현금, 그리고 떨어져 나오는 잔돈은 우리가 살기 위해 흘렸던 피, 땀, 눈물이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자금 사정을 걱정하고, 부상 치료를 위해 없는 돈을 짜내며, 연인을 구하기 위해 사채까지 알아본다. 우리도 비슷하다. 먹거리를 살 때 마다 지갑을 신경 쓰고, 큰 병이라도 앓게 되면 목돈이 필요하다.

그렇게 ‘캐셔로’는 평범한 히어로물과 궤를 달리한다. 지구 인간의 절반을 멸하려는 대단한 외계인과 싸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눈에 보이는 힘든 타인을 돕고 싶을 뿐이다. 나아가 ‘초능력=돈’이라는 특별한 설정이 상웅을 먼 발치가 아닌 우리 곁의 생활밀착형 히어로로 만들어냈다. 이맘때면 모아지는 불우이웃성금처럼, 정의를 지키려는 그의 고군분투에 작은 나의 돈능력도 보태고 싶어지는 이유다.

그래서 이 특별한 히어로를 보다 오래, 자주 만나고 싶다. 다행인 건 26일 공개 이틀 차에 넷플릭스 시리즈 순위 1위 자리를 고수 중이다. 내돈내힘 히어로이기에, 강상웅이 힘을 낼수록 그의 통장은 더욱 바짝 말라갈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거듭된 시즌으로 마주하고 싶은 심정이다. 마블의 친절한 이웃이 ‘스파이더맨’이었다면, 이제야 우리에게도 친절한 이웃 같은 히어로가 등장했다. 앞으로도 ‘캐셔로’의 활약을 위해서라면, 이미 언제든 지갑을 활짝 열 준비가 돼있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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