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다주택자든 1주택자든 실거주가 아닌 이상 집을 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집을 더 이상 투기나 투자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다. 출퇴근, 통학, 부모 봉양 등 다주택자나 비거주 1주택자가 된 나름의 속사정이 있겠지만 이런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정부의 강공책도 십분 이해한다. 부동산 망국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한채에 10억원하던 아파트가 20억원을 찍고 30억원이 되는 동안 대다수 사람들의 벌이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월급쟁이든 자영업자든 평범한 벌이의 사람이라면 집을 살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70억원 하던 강남 아파트가 50억원이 되든 50억원 하던 성수동 아파트가 40억원이 되든 별 감흥이 없다. 처음 한순간은 우와 하고 입이 벌어지지만 그 다음은 허탈한 마음뿐이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세금, 대출 등 동원할 수 있는 카드는 모두 동원할 태세다. 당장 3주 뒤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가 끝난다. 5월9일 이후로 집을 파는 다주택자는 양도차익의 최고 7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과도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사람들도 겨냥했다. 개인과 임대사업자를 막론하고 주택담보대출 연장을 멈춰세웠다. 정부는 이를 '금융과 부동산의 절연(絕緣)'이라고 자칭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의 강남 아파트 가격과는 반대로 조금만 들썩여도 금방 체감되는 게 있다. 바로 전셋값이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2주 연속 상승 중이다. 올해 들어서만 2% 가까이 올랐다. 전세가 뛰니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노도강·금관구' 아파트 가격이 다시 내달리기 시작한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 용인, 안양, 구리 등도 집값이 들썩인다. 강남3구만 바라보는 사이 전셋값을 거쳐 서울 외곽과 경기도의 집값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모양새다.
왠지 익숙한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는 스무 차례 넘게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 발표를 위한 대책을 만들어내야 할 정도의 대책 남발이었다. 한곳에서 물이 새면 새로운 대책으로 그 구멍을 막으려 했고 다시 다른 곳에서 둑이 터지면 또 새로운 대책을 발표했다. 이런 정부의 쉼없는 대책 발표를 비웃기라도 하듯 집값은 뛰었고 전셋값은 그보다 더 뛰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은 속도는 물론 깊이도 부족했다. 부동산정책에서만은 한치 앞을 내다보긴커녕 늘 한발 뒤로 물러섰다. 갭투자를 막겠다면서 임대사업자 대출 금리는 낮췄고 양도세와 보유세를 동시에 올리면서 거래 절벽을 만들어냈다. 전셋값을 잡겠다면서 임대차보호법 개정 속도는 항상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세입자들에게 대안이 돼줘야 할 공급대책은 매번 공수표였다. 영끌, 벼락거지, 전세난민, 똘한채라는 유쾌하지 않은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의지와 속도에서 이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실제 정부는 1·29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부지를 다 끌어모았다면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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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국제업무지구, 과천경마장, 용산캠프김 부지, 태릉CC 등 대책의 핵심이 되는 공급지에선 일찌감치 파열음이 들려온다. 이중 캠프킴 부지나 태릉CC 등은 문재인 정부 공급대책에 포함됐다가 좌초한 곳이다. 이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다시 공급안에 포함됐고 같은 갈등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한번 망가진 신뢰를 되살리려면 이전보다 더 큰 노력이 요구된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이를 하나하나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는 결과물도 필요하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큰 틀을 바꿀 수 있는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다. 그때그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건 운에 기대어 건물을 쌓아올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보수 작업만으로는 훌룡한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