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SC제일銀 노사 '바람맞히기'

[기자수첩]SC제일銀 노사 '바람맞히기'

전예진 기자
2011.08.08 07:49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지난 2일 오전 9시30분 금융노조의 문자가 한통 도착했다. 오전 10시 은행회관에서 SC제일은행의 노사협상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헐레벌떡 달려간 협상장. 리처드 힐 은행장은 취재진을 보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노조측은 "취재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며 "사진만 찍고 협상이 시작되면 내 보내겠다"고 얼버무렸다. 노사 양측간 '신경전'으로 읽혔다.

어수선한 분위기속 취재진이 협상장에서 밀려났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헌데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그 때부터 협상장 안 대화 내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협상' 내용은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첫 안건은 성과급 제도가 아니라 힐 행장과 김재율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의 '바람 맞추기'였다.

사측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날 불참한 김 위원장의 거취를 물으며 "당사자인 김 위원장이 참석해야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따졌다.

이에 노조측은 "행장은 김 위원장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냐"고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한발 더나가 지난달 20일 행장의 불참으로 불발된 만남을 거론하며 "행장은 얼마나 긴급한 행사가 있길래 안왔나" "실무진은 전날 날밤을 새웠지만 기다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쯤 되자 서로 감정이 상했던 일들이 속사포처럼 터져 나왔다. "힐 행장이 '유치원처럼 유치한 말하지 말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했지만 꾹 참고 있다" "협상 전 한국말로 정리된 문서도 없고 여기가 슈퍼마켓이냐, 기본이 안 돼 있다" 등 '뒷담화' 때나 나왔을 얘기들이 협상장에서 오갔다.

"한글로 번역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발언이 와전되는 것이다" 등 1차원적 해명도 빠지지 않았다. 감정도 격해졌다. 협상장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을 밖으로 피신(?)시킬 만큼 고성이 흘러나왔다.

사측과 노조가 감정 싸움을 벌이던 그 시간, 강원도 속초에서는 2000여 명의 은행원들이 파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늘로 SC제일은행의 파업은 43일째. 40일이 넘는 파업보다, 그 원인의 해법보다, 단 몇 시간 바람 맞춘 것에 더 관심을 쏟는 게 SC제일은행의 현주소다. 진짜 바람맞은 은행 고객들은 따로 있는 데 말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