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일본의 수출규제 피해기업을 돕기 위해 나섰다. 수출규제로 인해 생산에 차질이 생긴 중소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대출 만기가 도래하면 연장해준다. 이자도 감면해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재 부품 기업을 육성하는데에도 힘을 보탠다. 신한은행은 소재·부품기업 여신지원 전문 심사팀을 신설했고 국민은행은 ‘소재부품 기업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리은행은 경쟁력 있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과감한 투자와 대출을 지원할 방침이고 KEB하나은행은 일본산 부품 대체재 확보를 위해 M&A(인수합병) 자금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 3일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장이 참석한 간담회 이후 내놓은 방안이어서 팔을 비틀어 내놓은 대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렇지만 시중은행들도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는 신한은행이 간담회보다 앞선 지난달 31일부터 ‘소재부품 전문기업 성장지원 대출’을 시행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시중은행들이 수출규제로 피해를 입는 기업을 돕는 이유는 이들 기업이 우량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 자체적인 이유나 업황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게 시중은행의 판단이다. 잠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산을 뺏으면 우량 고객을 잃을 수 있다. 시중은행들이 ‘낙인 효과’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기업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도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피해기업 이름은 물론 지원 규모, 지원 회사수도 밝히지 않을 것”이라며 “조용히 지원해야 진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시중은행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일본계 은행 거래기업에 대한 대환대출을 지원한다. 이번 기회에 우량 중소기업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시중은행들이 피해기업을 지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은행이 기업과 함께 할 운명이어서다. 금융은 실물 경제를 반영하기 때문에 실물 경제를 책임지는 기업 없이는 은행도 존재할 수 없다. 수출규제가 길어지면 피해기업이 부실화될 수밖에 없음에도 은행이 나서는 건 이들 기업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힘과 힘이 충돌하면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패자만 늘어날 뿐이다. 시중은행에서 피해기업 지원을 총괄하는 대책반장들의 바람은 단 하나다. 대책반장을 오래 하지 않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대책반장은 “금융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란 뿐”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오래가지 않도록 ‘정치’가 힘을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