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조선업 마지막 열쇠 RG⑤금융권 입장

최근 중형 조선사의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지연 문제가 대두되면서 한국수출입은행이 뭇매를 맞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기한 내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금융기관이 발주사(선주)에 선수금을 대납하는 '지급보증'으로 수주를 받기 위해 필요한 금융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HJ중공업에 대한 RG 발급에서 빠져 있는 데다 중형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란 이유에서다.
수은은 억울하단 입장이다. 과거 2010년대 중후반 조선업 불황기에 시중은행은 물론 정책금융기관들도 RG 발급을 꺼릴 때 수은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RG 발급을 거의 떠안다시피 했고, 그 결과 발주처인 해외 선주들 사이에서 수은의 인지도가 높아져 대형 조선사 RG 발급이 지속돼왔다. 대형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액이 워낙 높다 보니 중형 조선사를 비슷한 규모로 지원해도 수은의 중형 비중은 타기관 대비 현저히 낮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단 설명이다.
수은 관계자는 "과거 조선사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대형 3사에에 대해서도 시중은행은 지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수은은 조선업을 살려야 한다는 판단 아래 지원을 지속했기 때문에 현재의 마스가(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2016년 조선업 불황 이후 구조조정에 들어간 선사들이 새롭게 수주에 성공하며 RG수요가 생겼는데, 은행들은 리스크를 줄이려 RG 발급을 미뤘다. 그러자 정부가 RG 분담제를 실시했는데, 이 때 수은이 절반가량을 부담하고 산업은행과 시중은행이 나눠서 절반을 담당했다. 수은은 조선, 해외건설 업종에 RG 등 대규모 수출금융을 제공하던 중 극심한 업황 악화로 2016년에는 설립 40년 만에 처음 적자를 냈다.
수은 관계자는 "해외 선주가 유사시 선수금을 환급해 줄 주체로서 오랫동안 인지도와 신뢰를 쌓아온 수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2010년대 중반 조선업 불황으로 금융권이 대형 3사에 대해서도 RG발급을 기피하던 시기부터 수은이 타정책금융기관 대비 높은 비중으로 RG 발급부담을 떠안았던 역사적인 배경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중형 조선사는 그간 수주 규모가 많지 않다가 지난해 조선업 호황기가 도래하면서 RG 발급 수요도 커졌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조선 RG 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하고 사업성 검토를 거친 RG 발급에 대해서는 면책특례를 도입하는 등 제도개선에 나섰다.

수은은 지난해 12월 중형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을 재개했다. 지난해 7월 금융위 주재 정부·정책금융기관 회의를 통해 중형조선사 RG 발급 협의안에 따라 대한조선·케이조선은 수은과 산업은행이 협의해 지원키로 했다. 이에 따라 수은은 총 6척에 대해 1억3000만달러(약 2000억원) RG를 발행하는 등 정상 지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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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는 HJ중공업의 경우 산은과 무역보험공사가 지원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산은은 HJ중공업의 주채권은행으로서 담보를 확보하고 있고 무보는 정부 예산을 바탕으로 특례보증을 할 수 있다. 반면 수은은 전액 신용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더욱이 HJ중공업은 과거 부실로 인해 채권단간 협약으로 연체된 차입금을 분할 상환중이며, 수은의 채권 잔액은 약 200억원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여신을 추가로 제공하는 것은 어렵단 게 수은의 입장이다.
수은 관계자는 "원활한 수주 지원을 위해 필요하다면 주채권은행(산은)이 대표로 RG를 발급하고 채권금융기관들간 손실분담 확약을 통한 공동지원을 하는 게 타당하다"며 "선수금이 해당 선박의 건조에 투입되도록 공정과 자금을 관리하는 데 있어 주채권은행의 관리가 필요하고 주채권은행이 공장에 대한 담보권을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중은행의 경우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지원이 정책금융기관보다도 낮은 형편이다. 시중은행은 2024년 6월 과거 조선업 침체로 인한 대규모 RG 손실을 경험한 이후 11년만에 중형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을 재개했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말 기준 RG발급 잔액은 대형조선사 11조9201억원, 중소형 조선사 1944억원으로, 중소형 비중이 1.6% 수준에 불과하다.
BNK(부산·경남은행)의 경우 중소형 조선 RG발급 잔액(지난해 말 기준)이 1471억원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인데, 지역 주력산업 지원 차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RG의 경우 한 번 지원하면 선박이 인도될 때까지 지속 관리해야 하고 업황이 어려워지면 보증만 떼이는 게 아니라 은행이 부족분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여전히 경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