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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스타트업이 'AI 기업'을 표방하며 시장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사업모델과 무관한 '무늬만 AI'가 적지 않다. 이른바 'AI 워싱'이다. AI를 중심으로 벤처투자가 몰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기업소개 자료에 AI 키워드를 넣지 않으면 투자자 미팅 잡기도 힘들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투자자와 소비자 입장에서 진짜 AI를 활용한 서비스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플랫폼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2024년 1140억달러 규모이던 AI 스타트업 투자액은 2025년 2110억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비AI 투자액은 2140억달러로 제자리걸음이었다. OECD는 지난해 4271억달러이던 전 세계 벤처투자금액 중 2587억달러(61%)가 AI 스타트업에 들어간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2022년 30%에서 3년만에 비중이 2배가 됐다.
자금 공급자인 LP(출자자)들 역시 AI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선호한다. 탈중앙화 인프라 구축 네트워크 '프로젝트 리버티'가 2025년 9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실시한 설문에서 대형 LP 80곳 중 73%가 "AI 역량이 강한 기업이 재무적으로 유리하다"고 응답했다. 미국 액셀러레이터 VC랩은 전체 신규 펀드 중 AI 전문 펀드 비중이 2022년 5.4%에서 2025년 24.5%로 4배 이상 늘었다고 분석했다. LP들의 요구가 VC의 투자 기준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스타트업들도 자기소개에 AI 키워드를 추가한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실제로는 AI와 무관하거나 개발 과정에서 제한적으로만 활용됐음에도, AI를 핵심기술로 내세우며 과장된 홍보를 하는 것이다. 특정 질문에만 대답하도록 제한을 걸어놓은 자동응답 챗봇을 공급하면서 'AI 챗봇' 따위의 이름을 붙이는 게 대표적이다.
해외 기업들도 AI 워싱에 동참하거나 심한 경우 'AI 사기'를 친다. 아마존은 계산대에 들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아마존 고' 매장을 AI 기술로 운영한다고 주장해 왔다. 2024년 4월 폭로된 바에 따르면 실제로는 인도의 저임금 근로자 1000여명이 실시간으로 매장 영상을 모니터링하며 결제를 처리했다. AI로 소프트웨어를 간편하게 만들어준다던 영국 스타트업 빌더AI는 알고 보니 인도 개발자 700여명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코딩하던 사실이 지난해 드러나며 청산 절차에 들어가기도 했다.
한 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AI 관련 소개가 IR덱(슬라이드 자료)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심사역 미팅 잡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며 "실제로 제품 개발 과정에 많든 적든 '클로드 코드'나 '깃허브 코파일럿' 같은 AI 어시스턴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전했다.

다만 이 같은 AI 워싱이 확산될수록 시장 전체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AI 키워드를 걷어내고 제품과 서비스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일반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작 투자 여부를 판단할 현장 심사역들에겐 AI 키워드가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말도 나온다. 한 VC 투자심사역은 "요즘 아이템들은 AI를 접목시키기가 너무나 쉽기에 AI 키워드가 굳이 차별화 포인트가 되진 않는다"며 "심지어 신발장이나 건조기에도 AI 키워드를 붙여서 제품을 소개하는데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다가오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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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ICT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나 4~5년 전 메타버스 열풍 당시에도 트렌드에 맞춘 '택갈이(같은 제품의 포장지(택)만 바꿔서 다른 것인 양 파는 행위)'가 유행했다"며 "결국 버블이 꺼진 뒤 닷컴이나 메타버스 이름만 빌리던 부실업체들이 정리됐듯이 AI 워싱 기업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도태되고 실제로 현실 문제를 해결해낸 제품과 서비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