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 개각… 관료 중시 인사
2010년 말 대규모 개각과 함께 관료 중심의 인사가 단행되었습니다. 경제팀과 청와대 보좌관 등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과 인사 배경, 여야의 반응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인사 이슈를 다룹니다.
2010년 말 대규모 개각과 함께 관료 중심의 인사가 단행되었습니다. 경제팀과 청와대 보좌관 등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과 인사 배경, 여야의 반응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인사 이슈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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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영란 전 대법관은 약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법관으로 활동해왔으며, 2004년 40대의 연령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법관이 되었던 여성 법조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청와대는 "국민이 겪는 각종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고 청렴하고 신뢰받는 공직사회의 구현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시점"이라며 "소수자 권익보호에 가치를 부여하고 판결을 통해 이를 실천해왔던 김 내정자를 권익위원장의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뛰어난 재판능력과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을 겸비 해 선후배 및 동료 법관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법정에서는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경청하며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99년 1월 집중호우 당시 침수 피해 주민들이 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시의 배수처리 잘못을 지적해 일부 승소 판결하는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를 중시하는 성향을 보였다. 2002년 9월에는 '민혁당' 사건과 관련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금융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재무 관료다. 공인회계사로 대학을 졸업한 뒤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하다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1979년 재무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재정경제부 금융협력과장, 외화자금과장, 증권제도과장, 국제금융국장 등을 역임했다. 2005년 세계은행 상임이사에 선출됐으며 인수위 경제 1분과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1차관, 주 필리핀 대사에 이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해 왔다. 특히 국제금융을 담당하면서 과감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최틀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8년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 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을 때 재정부 1차관이었으나 고환율 정책 논란으로 물러났다. 이후 주 필리핀 대사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등용됐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고 탁월한 추진력과 상황판단능력 등을 바탕으로 복잡한 경제현안을 효과적으로 조율해 왔다는 평가다. 경제정책과 실물경제, 국제경제 분야를 망라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사진)는 국회 내 최고의 미디어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를 맡으면서 입문했고, 이 인연으로 대통령 부속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이 된 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꾸준하게 미디어 관련 업무를 추진해왔다. 18대 국회 후반기 때는 문방위 위원장을 맡았다. 한나라당 미디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깊이 관여했고, 미디어법 통과에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는 홍보기획본부 본부장으로 활약했다. 경기 양평·가평이 지역구이며,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부인 이상희(48)씨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있으며,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인맥도 두터워 지난해 개각 때도 문화부 장관 후보군에 올랐다. 입이 무거우며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 양평(53) △성균관대 사회학과△16·17·18대 의원 △한나라당 원내
감사원장에 내정된 정동기(57)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은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적극적이고 탁월한 업무 처리 능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청와대는 "날로 치열해지는 국익경쟁과 다양하고 전문화되어 가는 행정환경 속에서, 정부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직사회를 구현하며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국가기강의 중추적 기관장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지검장, 대구지검장, 대구고검장,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검찰에 재직할 때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지휘 통솔력이 뛰어나며 조직애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검찰 최초로 기업경영 혁신기법인 '6시그마'운동을 검찰에 최초로 도입, 혁신 바람을 일으키는 등 기획과 정책판단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와 함께 뛰어난 사정 수사 능력을 갖췄다는 평과 함께 보호감찰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저서 '보안처분제도론', '보호관찰제도 10년의 평가' 등 다수의 논문을 내며 우리나라 보호관찰제도를 정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별보좌관(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을 가장 잘 읽는 측근 중 한 명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을 당시 '친서민·중도실용' 기조 설정을 주도해 국정지지율을 50%대로 끌어올린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 보좌관은 여권내 최고 수준의 전략 이론가이자 기획통으로 꼽힌다. 20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획조정 분과위원을 맡아 이명박 정부 국정철학의 밑그림을 그린 '핵심 브레인'이다. 그는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MB맨'으로 떠올랐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소신파로, 후보 시절의 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신망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 이명박 후보 선대위 대변인 등을 맡으며 이 대통령을 보좌했다. 2008년 4·9 총선 당시 친박(친박근혜)계에 밀려 재선에 실패했지만 총선 패배 두달 후인 6월 수석급인 청와대 홍보기획관으로 복귀했다. 홍보기획관 재직시 정
31일 금융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내정된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부산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행시 23회로, 재경원 외화자금과장, 경제분석과장, 증권제도과장 등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은 금융통이다. 1993년 금융실명제 대책반장, 1995년 부동산 실명단 총괄반장, 1997년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 등을 지냈다. 2004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으로 보임된 후 2005년 1월에는 행시기수를 뛰어넘어 금융정보분석원장(1급)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4개월 만에 다시 차관보로 초고속 승진, 이후 금감위 부위원장과 재경부 차관을 지냈다. 2005년 8.31 부동산대책 실무를 총괄하고 신용불량자 종합대책,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 등 굵직한 현안을 매끄럽게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8년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로 자리를 옮겨 연구소에 변화와 혁신의 기운을 불어넣어 내·외부적으로 호평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부인 윤계숙씨와의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다음은 주요 약력
이명박 정권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이른바 '순장 3인방' 중 한 명이다. 오랜 정치부 기자 생활로 대인관계가 두텁고 정치 역사와 생리를 꿰뚫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과는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인 2004년 '뉴라이트 운동'을 기획했던 것이 이 대통령의 주목을 받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캠프에서 공보실장을 맡았으며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 홍보수석비서관 등 줄곧 '이명박의 입' 역할을 해 오다 지난 7월 물러났다.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청와대 '핵심 관계자'로 불리며 뛰어난 정무감각과 홍보역량을 발휘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마사지' 논란과 봉은사 주지 교체 외압 의혹을 겪기도 했다. △서울(53) △신일고 △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우 △동아일보 기자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위원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보특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