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박태준 별세
포스코 창업자 박태준 회장의 별세와 장례, 업적, 유언 등 다양한 소식을 다룹니다. 철강산업 발전과 애국심,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 그의 신념과 삶을 조명합니다.
포스코 창업자 박태준 회장의 별세와 장례, 업적, 유언 등 다양한 소식을 다룹니다. 철강산업 발전과 애국심,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 그의 신념과 삶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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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임종에는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둘째딸 유아씨를 제외한 미망인, 자녀, 사위 등 가족 모두가 참석했다고 박 명예회장의 장례준비 유족 측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명전 삼정KMPG 부회장이 전했다. 박 명예회장은 미망인과의 사이에 1남4녀를 뒀다. 김 부회장은 13일 서울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같이 밝히고 "손주 중에는 맏딸의 장남인 윤재호씨가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유아씨는 현재 귀국길에 올라있다"고 전했다. 박 명예회장의 재산과 관련, 김 부회장은 "현재 고 박 명예회장 명의의 재산이나 유산은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생활비는 자식들로부터 받았고, 그동안에도 맞딸인 진아씨의 집에서 생활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을 창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생활하지 못했다"며 "정리할 재산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김명전 삼성KPMG 부회장은 13일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최근 입원 전 유언으로 "포스코 임직원들은 애국심을 갖고 일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고 박 명예회장은 유언으로 "포스코가 국가 산업의 동력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한다"며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강의 포스코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 창업 1세대들 중에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다"며 안타까워 했다. 한편 박 명예회장은 미망인에게 "고생시켜 미안했다"고 말했으며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화목하게 잘 살라"고 유언을 통해 당부했다.
(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13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타계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포철신화'를 일군 장본인으로 숱한 일화를 남겼다. 1978년 중국 최고의 권력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일본의 기미츠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라는 대답을 들은 일화는 유명하다. 특히 제철소 건설과정의 수많은 일화들은 고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준다. 1967년 어렵게 일관제철소 건설 지원을 위해 조직된 국제차관단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부정적인 전망으로 와해되자 일본의 유력인사들을 일일이 설득해 대일청구권자금을 전용하도록 노력해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실현했다. 또 1977년 3기 설비가 공기지연으로 고전하고 있을 때에도 발전 송풍 설비 구조물 공사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80% 정도 진행됐지만 부실공사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며 모두 폭파한 일은 고인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포스코 창업자인 청암(靑岩)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5시20분께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뱍 회장의 사인은 급성폐손상으로으로 인한 호흡곤란이었다. 박 명예회장의 주치의였던 장 준 연세대 세브란스 호흡기 내과 교수는 "박 회장이 이날 오후 5시20분 급성폐손상으로 인한 호흡곤란이 발생해 운명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날 "지난 수술 때 폐 부위에서 석면과 규폐가 발견됐었다"며 "이 때문에 염증이 발생했고 흉막유착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10년전 미국에서 받은 수술 이 후 꾸준히 휴유증을 알아왔다는 의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장 교수는 "후유증은 최근 몇개월 사이에 진행됐다"며 "지난달 9일 폐부종 증세로 병원에서 흉막-전폐절제술을 받았고 지난 5일 급성 폐손상이 발생해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를 받다 돌아가셨다"고 설명했다. 치료 방법에 대해서는 급성 폐손상 치료 특성상 수면 유도 하에서 치료를 해왔다고
(서울=뉴스1) 서봉대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별세한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박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 산업화에 공이 큰 분이 우리 곁을 떠나게 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 뉴스1 바로가기
(서울=뉴스1) 진성훈 기자 =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13일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 대해 "비록 파란만장한 인생이고 영욕의 삶이었지만 고인께서 군인, 기업인, 정치인으로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어 "특히 대한민국이 '철강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에는 고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 뉴스1 바로가기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박 명예회장은 철강 불모지였던 한반도에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성장시켜 우리나라를 철강선진국으로 도약시킨 우리 경제사의 거목이다. 그는 국내 축구에도 기여한 바가 커 축구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대한중석을 성장시켰던 그는 1960년대부터 축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1954년 월드컵에 골키퍼로 출전한 함흥철, 1960년대 스타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단장을 역임했던 한홍기 등이 뛰던 당시 대한중석 실업축구단을 강팀으로 키우기 위해 서울에 숙소를 마련하고 경기장을 제공한 그다. 1960년대 한국에 '스포츠 산업'이라는 것이 가능할리 만무했을 터인데, 그는 그때부터 스포츠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힘입어 대한중석은 국내 최고의 팀으로 거듭났다. 박 명예회장이 대한중석의 성공을 발판으로 종합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이승에 남기고 간 인연은 그가 만들어낸 쇳물처럼 방대했고, 역동적이었던 삶 만큼이나 뜨거웠다. 한국 산업발전의 역사처럼 감동적인 사연도 많다. 포스코가 세계최대 철강기업으로 우뚝 서는데는 박 명예회장의 이런 인연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철강왕의 인맥은 정치권과 재계는 물론 해외로도 뻗어 있었다. 박 명예회장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게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둘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났는데, 당시 탄도학을 가르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박태준의 재능과 열정을 무척 아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 운명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됐다. 5·16 군사혁명을 준비하던 박 전 대통령이 박 명예회장을 불러 “임자는 참여하지 말고, 일이 잘못되면 내 식구들이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의 신뢰가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군사혁명으로 권좌에 오른 박 전 대통령은 이후 그를 따로 불러 국가경제 재건방
철(鐵)의 사나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폐'와 관련한 질환으로 스러졌다. 세브란스병원은 박 회장의 사인을 '급성 폐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호흡부전 '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오래전부터 흉막섬유종을 앓아 왔다. 흉막섬유종은 폐를 싸고 있는 막인 흉막에 섬유종양이 생긴 것을 말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석면에 노출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위험요인이다. 양성 섬유종양의 경우 드물게 종기가 커진 경우에는 흉통·기침이 일어나거나 폐와 심장을 압박하여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악성 섬유종양의 경우에는 흉막에 발생하면 흉수가 고이기 때문에 호흡곤란·흉통이 일어나고, 복막에 발생하면 고인 복수 때문에 복부팽만 증세 등이 나타난다. 박 회장은 악성 흉막섬유종을 앓을 것으로 추측된다. 박 회장은 지난 2001년 미국 코넬대병원에서 흉막섬유종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폐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후 박 회장은 지난달 9일 '흉막-전폐절제술'을 받기 위해 세브란스병
"철은 산업의 쌀이다." 13일 세상을 떠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남긴 말이다. 1968년 포항제철을 설립한 그는 포항제철의 존재의 이유를 이 같은 간결한 말로 압축해 직원들에게 각인시켰다. 그가 제시한 포스코의 사시(社是)인 '제철보국'(製鐵報國)은 아직도 포스코 임직원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 산업의 쌀인 철을 충분히 만들어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다짐이다. 육군 장성(소장) 출신인 박 명예회장은 군 출신답게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어록을 남기며 포항제철의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 그의 어록을 좇아본다. △철은 산업의 쌀이다. 싸고 좋은 품질의 철을 충분히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제철보국이다.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면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 △나는 많은 시간을 사람 문제에 골몰한다. 기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만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돈은 우리 조상님들의 핏값이다. 공사를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다 우향우해서 저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포스코 창업자인 청암(靑岩)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5시20분께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지난달 9일 폐부종 증세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흉막-전폐절제술을 받았고 지난5일 급성 폐손상으로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를 받아 왔다. 고인은 지난 2001년 흉막섬유종으로 미국에서 폐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폐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후유증에 시달려왔다. 한국의 철강왕으로 불리는 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제철보국(製鐵保國)의 일념으로 국가경제 기틀을 마련한 불세출의 경영인이다. 1968년 포스코 초대 사장에 임명돼 24년간 CEO직을 유지했으며 포스코를 세계 6위의 철강업체 반열에 올려 놓았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 2000년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다. 1927년생으로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전쟁과 빈곤의 악조건을 거치고 경제개발의 최전선을 달려온 그의 삶은 한국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