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0년, 앞으로 갈길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양국의 경제 협력, IT·게임 산업 진출, 동북아 외교, 중국 내수시장 공략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와 도전, 미래 전략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양국의 경제 협력, IT·게임 산업 진출, 동북아 외교, 중국 내수시장 공략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와 도전, 미래 전략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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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TE, 화웨이 등 중국기업들이 휴대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저가 휴대폰 시장에서 중국기업의 강세는 노키아의 몰락을 가져온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장기적으로 중국기업들은 휴대폰 세계 1위 삼성전자의 최대 위협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2분기 휴대폰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중국 ZTE는 1800만대를 판매했다. 점유율은 4.3%로 삼성전자, 노키아, 애플 뒤를 이은 세계 4위다. ZTE 판매량은 LG전자, HTC, 모토로라, RIM 등 세계적인 단말기 제조업체보다 많다. 세계 휴대폰 판매량 순위에는 또 다른 중국기업이 있다. 화웨이는 2분기 1100만대를 팔아 점유율 2.6%, TCL은 900만대를 팔아 점유율 2.2%로 각각 6·7위에 올랐다. ZTE와 화웨이 등 중국기업들은 1년전만해도 휴대폰 시장에서 변방이었다. ZTE는 1년전 점유율이 3%로 LG전자에 한참 못 미쳤다. 화웨이와 TCL는 간신히 10위권 안에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ZTE는 세계
13억 중국 인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1위 온라인게임은? 바로 한국에서 만든 총싸움게임(FPS) '크로스파이어'다. 지난 2007년 네오위즈게임즈가 중국 텐센트를 통해 중국에 서비스하고 있는 크로스파이어는 중국 안에서 동시접속자 수가 350만명을 넘어서며 중국 최대 온라인게임으로 성장했다. 크로스파이어를 포함해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게임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이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와 '카트라이더', 위메이드 '미르의전설2' 역시 중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PC보급률이 20%에 불과한 중국 시장은 앞으로도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온라인게임은 콘텐츠 사업의 특성 상 단순한 수출이 아닌 그 나라의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 온라인게임의 중국진출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 비해 낙후한 초고속인터넷 환경과 낮은 사양의 PC, 한국과는 다른 중국 이용자들의 성향 등 수많은 장벽이 있었다. 이 같은 환경을 가장 잘 극복한 것
중국이 세계 최대 휴대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ZTE, 화웨이 등 중국 휴대폰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급성장한 중국 휴대폰 시장 덕분이다. 콧대 높은 애플도 중국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도 중국 휴대폰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올해 중국이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2%로 미국 21.3%에 이어 2위였다. 특히 IDC는 "올해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으로 올라선 이후 다시 순위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2016년에는 중국 점유율이 20.2%로 미국과 격차를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미국을 앞섰다. SA(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3분기 중국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2390만대로 미국 2330만대를 앞섰다. 중국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ZTE와 화웨
# 10여년 전이던 지난 2002년 중국 베이징의 한 지하철역. 당시만 해도 지하철 승객은 매표구에서 구매한 승차권을 검표원에게 일일이 보여줘야 승차가 가능했다. 이미 30년 전부터 자동개표 시스템을 이용해 왔던 우리로선 낯선 모습이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베이징 지하철 전구간은 우리와 같은 무인발매기와 자동개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자동요금징수시스템을 대거 구축한 결과다. 이 시스템을 구축한 주역이 바로 삼성SDS와 LGCNS 등 우리 IT기업들이다.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우리 IT서비스 업계가 중국 대륙에서 IT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IT서비스업체들이 앞다퉈 중국사업을 확대하면서부터다. 자동요금징수시스템(AFC)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SDS의 경우, 베이징과 광저우, 청두 증 중국전역에서 지금까지 2000억원 규모를 수주하며 핵심 사업으로 육성 중이다. AFC사업은 스마트시티와 스마트 교통, 금융IT 분야로 확대하는 교두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촉발된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주요국들의 영토 논쟁은 오는 24일로 수교 20주년을 맞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당장 이번 영토 논쟁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동맹에 균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두 전통 우방을 중심으로 동북아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라크 전쟁을 치르는 사이 약화된 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G2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도 이슈로 한일 관계가 급랭하면서 미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쉽지 않은데다 대선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오바마 행정부의 여력도 부족하다. 반면 중국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훨씬 커졌다. 중국은 세계 2차 대전 때 일본의 침략을 받은 점에서 우리와 같은 과거사를 갖고 있고, 센카쿠열도를 놓고 일본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는 점도 같다. 독도
"물이 흐르면 자연히 개천이 될 것이다.(수도거성·水到渠成)"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양국 간 고위급 회담에서 리펑(李鵬) 국무원 총리가 한 말이다.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희망 섞인 전망이었다. 한중 수교 20년 만에 리 총리의 발언은 허언이 아님이 증명됐다. 1992년 64억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교역액은 지난해 36배 가까이 증가한 22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연평균 22.9% 증가한 것이다. 교역 규모만 커진 게 아니다. 대중국 무역수지는 지난해 통관 기준으로 477억 8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무역수지 흑자 규모인 321억 4000만 달러를 뛰어 넘는 규모다. 상호보완·정경분리 원칙 밑거름=이처럼 한중 교역이 눈부시게 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상호보완체제인 생산분업 구조와 정경분리 고수 원칙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양국의 산업, 정치 구조가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얘기다. 한중 수교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오는 24일 한국과 중국의 수교 20주년을 맞아 양국 간 FTA(자유무역협정)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산적한 외교 현안에도 불구하고 수출 경쟁력 제고 등 실익을 내세워 FTA 협상에 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2일 "한중 FTA가 체결되면 대중국 수출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중국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역시 한국시장 확대라는 경제적 측면과 함께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중 FTA 협상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양국은 이달 22일부터 24일까지 한중 FTA 3차 협상을 갖는다. 지난 5월 양국 통상장관 회담에서 협상 개시를 선언한 후 3개월 만에 벌써 세 차례 협상을 가졌다. 협상 방식도 가시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협상 타결의 걸림돌인 민감품목 보호를 위해 FTA 협상을 두 단계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양
지난 20년간 한-중교역이 없었다면 매년 16억달러씩 무역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손경식)는 오는 24일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이같은 내용을 담은 ‘통계로 본 한·중수교 20주년’ 보고서를 22일 발표했다. ◇대중 무역흑자, 전체 흑자 규모 추월=보고서에 따르면 ’92년 한중 수교 이후 20년간 한국의 對중국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2726억달러로 같은 기간 전체 흑자규모 2397억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년간 對중국 흑자를 제외하면 매년 약 16억달러씩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對중 무역흑자는 전체흑자보다 408억달러가 많아 최근의 국내경기 회복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는 지난 92년의 경우 미국(23.0%)과 일본(19.6%)의 교역량이 전체의 40%를 차지한 반면 중국과의 교역량은 4.0%에 불과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한중교역량은 35배가량 커져 중국과의 교역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손경식)는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일에 맞춰 베이징호텔(北京?店)에서 ‘한-중 경제계 지도자 회의’를 개최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신박제 NXP반도체 회장, 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 김영대 대성 회장, 송병준 산업연구원 원장 등 한국 경제인 100여명과 완지페이(萬季飛) 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 회장, 슝주링(熊九玲) 북경 CCPIT 회장, 쉬칭(徐?) 산동성 CCPIT 회장, 우궈디(??迪) 중국국제에너지그룹 동사국 주석 등 중국 경제인 100여명이 참석했다. 양국 정부를 대표해서는 이규형 주중한국대사, 아부라이티 아부두러시티(阿不來提·阿不都熱西提)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장신치(張新起) 칭다오시 시장 등이 참석했다. 손 회장은 개회사에서 “한중 양국의 교역규모는 수교 후 20년 동안 35배나 증가해 22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2015년에는 3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한중 수교 후 몇 차례의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대 경제대국(G2)으로 성장했는데도 중국의 금융제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책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중국의 금융제도』가 중국 경제는 물론 금융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중국의 금융제도』의 집필을 진두지휘한 임호열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장은 “중국 특유의 폐쇄성과 신빙성 있는 자료 부족을 감안해 인민은행 등을 비롯한 중국의 금융기관과 중국에 진출해 있는 국제금융기구 전문가들과 면담 및 서면조사를 통해 실제로 운용되는 중국의 금융제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노력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임 소장은 “4명밖에 안되는 인력으로 방대하지만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은 중국 금융제도를 정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며 “직원들이 1년6개월 동안 휴일과 휴가도 반납한 채 중국 금융제도에 대한 체계 잡힌 책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의 금융제도』는 중국의 중앙은행(제2장)과 금융기관(은행 증권
“한국과 중국이 1992년 월24일에 수교한 것은 중국이 1978년부터 시작한 개혁개방의 중요한 성과입니다.”(장팅옌(張庭延) 초대 주한중국대사) “북한의 반대와 저항을 극복하고 한국과의 수교를 결단한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년이 흐른 뒤 한국과 중국의 교역규모가 2400억달러에 이르고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발전한 것을 보면 당시의 결단과 확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김학준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20주년을 맞아 24일 오후, 중국의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국문화재단-중국인민외교학회 세미나’에서 한중 수교 당시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당사자들은 한중 수교는 한반도에서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한중수교 당시 총리였던 정원식 전총리는 “한중 수교는 냉전을 끝내고 양국관계를 회복시키고, 한국이 독자적 국방정책을 추진한 결실이었으며, 중국으로서도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며 “
중국을 모르고는 외교를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중국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에 정통한 정치인들은 많지 않다.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는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지난 2004년 중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베이징대학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중국에 대한 심층 연구를 한 바 있다. 각계각층 지도자를 만나 연을 쌓았고 현재까지도 중국공청단 중앙과 상무부 및 많은 지방성 관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상남도 지사로서 수차례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중국을 가장 잘 아는 의원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박병석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중앙일보 기자로 있던 1985∼1990년 5년 간 홍콩 특파원으로 일하며 대중 인적 네트워크를 넓혔다.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신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50여일간 베이징 현지 취재를 성사시켰던 일화는 유명하다. 1982~1983년에는 대만 정치대에서 공부해 중국 본토뿐 아니라 대만에도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