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 아닌 이중성"…오이디푸스가 전하는 민주주의의 본질

"이분법 아닌 이중성"…오이디푸스가 전하는 민주주의의 본질

안재용 기자
2026.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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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O 광화문클럽] 이동수 경희대 교수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인간과 정치'

이동수 경희대 교수/사진=송채정 촬영감독
이동수 경희대 교수/사진=송채정 촬영감독

"아테네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보면 안 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 전성기에 활동했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그리스 비극 시인들의 작품을 봐야 아테네 민주주의가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공공대학원장을 역임한 이동수 교수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PADO 광화문클럽'에서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인간과 정치-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PADO는 머니투데이가 만든 국제시사·문예매거진이다. 광화문클럽은 PADO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공론의 장으로, 매월 여는 클럽데이에서 국제정세와 인문·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강연과 토론을 진행한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장과 교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정치철학과 시민사회론 등을 연구해 온 이 교수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민주주의 정신: 아테네의 메타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아테네 민주주의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를 전후한 30년 남짓이다. 이후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했고 민주정이 무너졌다가 복원되는 등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직후 소크라테스가 사형에 처해진 사건은 아테네 지식인들이 민주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아테네의 지식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들을 쓰는 거죠. 특히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인왕 제도를 이야기하면서 민주주의를 비판했습니다."

반면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는 아테네 민주정이 발전하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에 활동했다. 당시 그리스 비극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연인 동시에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시민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

"그리스 비극은 단순히 문학 작품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정치 교육 텍스트였습니다. 아테네가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죠."

이동수 경희대 교수/사진=송채정 촬영감독
이동수 경희대 교수/사진=송채정 촬영감독

그렇다면 그리스 비극에는 어떤 민주주의 정신이 담겨 있을까. 이 교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 오이디푸스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세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정치의 의미를 설명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해결한 것으로 유명한 오이디푸스는 의도치 않게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적 인물이다. 테베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재앙이 닥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왕을 살해한 범인을 추적했지만 끝내 드러난 범인은 자기 자신이었다. 범인을 쫓으면 오이디푸스 본인이 해를 입을 것이란 예언을 들었지만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멈추지 않은 양심적 인물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오이디푸스가 '이중성(Duality)'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지혜로운 영웅이었지만 자신의 정체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이었다. 테베를 구원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테베에 재앙을 가져온 인물이기도 했다.

"오이디푸스는 최고의 영웅이죠. 수수께끼 풀이자, 지혜로운 사람을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또 지금 같은 침대를 쓰고 있는 부인이 자기 어머니라는 사실조차도 몰랐죠. 지식인이지만 무지한 자, 눈을 가졌지만 진실을 볼 수 없는 자인 거죠."

이 교수는 이중성과 이분법(Dualism)의 차이를 강조했다. 이분법은 세상을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등으로 나눠 이해하는 방식이다. 반면 이중성은 서로 모순되는 속성이 한 존재 안에 공존한다는 의미다. 인간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양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분법과 이중성을 구분해야 된다는 게 그리스 비극의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면이 있고 악한 사람에게도 선한 면이 있습니다. 세상이 실제로는 이분법이 아니라 이중성으로 이뤄져 있다는 게 그리스 비극의 가르침입니다."

이같은 통찰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흔히 정치적 입장에 따라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지만 실제 개인의 생각을 어느 한쪽으로만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왜 통합이 안 되느냐.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로 나누면 둘 중의 하나가 옳거나 둘 중의 하나가 승리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거죠. 그렇지만 사실 세상사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이분법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 교수는 인간이 이중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틀린 존재로 규정하지 않게 되고 이를 통해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그리스 비극이 보여주는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들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정치 공동체를 '이방인들의 연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만큼 정치의 핵심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누구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리는 것도 아니고 누가 선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악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국 정치의 핵심은 협치입니다. 어떻게 나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힘을 모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내가 목적지를 알면 나 혼자 가도 되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나 혼자 가도 되죠. 그렇지만 인간은 목적지를 알 정도의 지혜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이디푸스처럼) 눈도 보이지 않고 다리까지 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같이 어깨동무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랑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같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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