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원·슈퍼골드·그린시스' 앞세워 신고 중심 '배 시장' 변화 시도
- "품종 개발→생산단지→유통·소비 연계…연구성과 산업화 속도"

좋은 품종을 만드는 것만으로 농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농가가 그 품종을 선택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유통업체가 상품성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야 연구성과가 하나의 산업으로 완성된다.
김대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이 최근 공을 들이는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구실에서 만들어낸 성과를 농업 현장과 시장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김 원장은 28일 "그동안 농업 연구기관의 역할이 우수 품종과 기술을 개발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면 이제는 개발한 성과가 실제 농가 소득과 새로운 시장 창출로 이어지도록 생산·유통·소비 단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산 배 신품종이다.
국내 배 시장은 오랫동안 '신고' 중심으로 굳어져 있다. 2025년 기준 신고 재배면적은 전체 배 재배면적의 85.4%에 달한다. 명절 선물용 대과 중심의 소비 구조도 오랜 기간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은 크고 보기 좋은 과일보다는 적당한 크기와 다양한 맛, 일상적인 소비 편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원예원은 이런 변화에 맞춰 '설원' '슈퍼골드' '그린시스' 등 녹색배 품종을 새로운 카드로 내놨다.
'설원'은 9월 초 수확하는 조생종으로 평균 무게 600g, 당도 14브릭스 이상이다. 아삭한 식감과 함께 과육 갈변이 적어 조각과일용으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슈퍼골드'는 은은한 산미가 어우러진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으로 중도매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린시스'는 풍부한 과즙과 아삭한 식감에 검은별무늬병 저항성까지 갖췄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품종도 농가가 심지 않으면 시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수는 새 품종으로 바꾼 뒤 정상적인 수확이 가능해질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품종 갱신 과정에서 3년 이상 소득 공백이 발생할 수 있고, 각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지를 농가가 직접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새로운 품종 개발보다 보급과 확산이 더 어려운 이유다.

김 원장이 신품종 연구와 함께 산업화와 보급 체계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예원은 이를 위해 품종 개발에 그치지 않고 재배기술과 선별 기준을 함께 마련하는 한편 지방정부와 전문 유통조직을 연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보급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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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녹색배 재배면적은 '설원' 10㏊, '슈퍼골드' 27㏊, '그린시스' 43㏊ 수준이다. '설원'의 경우, 울산에서 2029년까지 10㏊, 나주에서는 2030년까지 30㏊ 규모의 생산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별 생산단지와 유통 조직을 함께 묶는 시도도 성과를 내고 있다. 안성에서는 '신화'를 '안성맞춤배'로, 아산에서는 '그린시스'를 '초롱배'로 유통하고 있다.
울산은 '황금배'와 '설원'을 묶어 고당도 녹색배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나주도 국내 육성 품종을 중심으로 생산·유통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원예원은 이와 함께 기후변화와 병해충에 대응하기 위해 개화기가 늦은 품종과 자가결실성 품종, 화상병·검은별무늬병 저항성 품종 등을 육성할 계획이다.
동시에 당도와 식감, 저장성 등 소비자가 원하는 특성을 강화하고 디지털 육종기술을 활용해 우수 계통을 보다 빠르게 선발한다는 구상이다. 이후에는 재배기술과 선별 기준, 생산단지 조성, 유통·소비 홍보까지 연계해 보급 효과를 높일 방침이다.

김 원장의 관심은 국내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달 초에는 스리랑카와 태국을 찾아 해외 농업기술 협력 현장을 둘러봤다. 스리랑카에서는 KOPIA센터 15주년 성과공유회에 참석했고, 태국에서는 치앙마이대학교 농과대학과 고지연구소 등을 방문했다.
특히 스리랑카 KOPIA 사업은 기술이 실제 현장에 정착했을 때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15년간 현지 양파 종자 생산성은 ㏊당 600㎏에서 최대 1200㎏으로 2배 늘었고, 건조지 양파 생산량은 ㏊당 7.7톤에서 28톤으로 약 3.6배 증가했다. 토마토와 고추 교배종자의 현지 생산 기반도 마련됐다.
김 원장은 당시 "지난 15년의 협력은 기술 전수를 넘어 현지 농업의 생산성과 자립 역량을 높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해외든 국내든 결국 핵심은 같다. 연구성과가 연구실 안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신품종 하나가 농가의 선택을 받고, 생산단지를 형성하고, 유통망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 연구기관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여하느냐에 따라 연구성과의 가치도 달라진다.
김대현 원장이 원예특작 연구의 무게중심을 '개발'에서 더 나아가 '산업화와 시장 안착'으로 넓혀가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