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하고 싶어도 선뜻 집을 옮기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서울에 사는 맞벌이 부부 A씨는 최근 전세계약을 갱신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사실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할 계획이었으나 주변에 마땅한 매물을 찾기 어려웠다. 갱신계약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기존 집에 남으면 갱신계약을 통해 임대료 인상 부담을 덜 수 있지만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려면 오른 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마련해야 했다.
전세 세입자들이 주거 여건에 맞춰 집을 선택하기보다 비용 부담 때문에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비자발적 잔류' 사례가 늘고 있다.
2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서울 아파트 전용면적 60㎡ 초과~85㎡ 이하 전월세 거래의 신규계약 비중은 52.3%, 갱신계약은 42.5%였다. 올해 같은 기간 신규계약 비중은 48.5%로 3.8%포인트 하락한 반면 갱신계약 비중은 48.9%로 6.4%포인트 상승했다. 신규계약 비중은 절반 아래로 내려선 반면 지난해 40%대 초반이던 갱신계약 비중은 50% 가까이로 껑충 뛴 모습이다.
이처럼 갱신계약이 늘어난 배경에는 임대비용 상승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 신규계약과 갱신계약 사이에는 보증금 격차가 존재한다. 올해 1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7만4407건을 분석한 결과, 전세 신규계약의 중위 보증금은 5억8500만원으로 갱신계약의 5억3000만원보다 5500만원 높았다. 신규계약을 맺으려면 갱신계약보다 중위 보증금 기준으로 10.4%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셈이다.
보증금 격차는 자치구별로 상이했다. 서초구가 신규·갱신계약 간 중위 보증금 차이는 2억원으로 가장 컸고 강동구와 은평구도 각각 1억원에 달했다. 송파구는 8800만원, 동대문구는 7500만원, 성북구는 6000만원 차이를 보였다. 신규계약으로 갈아타려는 세입자에게는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에 이르는 추가 자금이 요구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신규계약과 갱신계약간 보증금 격차는 갱신요구권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월세 세입자는 2년의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이후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1회에 한해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 임대료 인상률은 5% 이내로 제한된다. 이와 달리 신규계약에는 이 같은 인상률 상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새 집으로 이사를 하려면 불어난 보증금과 함께 이사 비용과 중개보수도 부담해야 한다. 임대 매물이 급감한 만큼 직장과의 거리, 자녀 교육, 주택의 면적과 상태 등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도 쉽지 않다. 기존 집에 계속 사는 것이 선호하는 선택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집으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부담스런 탓에 갱신계약을 택하는 늘어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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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존 계약을 갱신하며 버티는 선택이 매번 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이미 사용한 세입자는 다음 계약에서 4년 이상 누적된 시세 상승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전월세 급등 상황에 주택 공급 부족까지 장기화할 경우 갱신계약 세입자가 계약 만료 시점에 떠안게 될 주거비 부담은 한층 불어날 수 있다.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의 안정을 판단할 때 전셋값 상승률뿐 아니라 세입자가 실제로 원하는 주택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주택임대업계 관계자는 "갱신계약 증가는 기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주택 공급 부족과 가격 부담이 겹친 결과일 수도 있다"며 "선택 가능한 가격대의 임대 매물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갱신계약이 주거 이동의 제약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