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노동부 시행 지침, 인력배치 쟁의 대상으로 열어 둬 업계 우려

정부가 노동쟁의 범위를 둘러싼 혼란을 줄이겠다며 시행지침을 내놨지만 호남권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등 신규 투자 현장의 핵심 쟁점인 인력 배치에는 분쟁 가능성을 남겼다. 공장 신설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 대상에서 제외하면서도 인력운영계획이 구체화돼 근로조건 변화가 예상되면 배치전환과 관련한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싼 이견이 노동쟁의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재계에서는 투자 결정과 실행을 인위적으로 나눈 '반쪽짜리' 지침이 반도체와 AI(인공지능) 산업의 투자 불확실성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계는 3일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에 맞춰 발표한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과 관련, 투자와 신기술 도입에 수반되는 인력 배치를 교섭 대상으로 열어둔 부분이 기업의 인사·경영권을 제약할 수 있다고 일제히 우려했다.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지침은 공장 신설·이전, 사업 매각·인수, 신기술 도입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투자 결정의 철회나 반대 요구는 물론 부지·규모·이전지역·시기 등도 사용자의 사업경영상 결정으로 봤다.
다만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인력운영계획이 수립 중이거나 결정·공지돼 근로조건의 변동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면 해당 배치전환과 관련 근로조건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공장 신설에 따른 근무지·직무 및 근무형태 변경, 이전에 따른 수당이나 통근·이주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사업 발표 직후처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만 있는 단계는 교섭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신규 투자에 따른 인력 배치는 기존 고용관계를 축소·재편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통상적인 인사이동이라고 주장했다.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지위나 근로조건에 불리한 변경을 수반하지 않는 만큼 이를 노동쟁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장 신설 등 투자가 결정돼도 숙련인력과 연구인력은 신규 채용이나 외부 충원만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며 "인력 배치를 놓고 단체교섭이 지연되거나 쟁의행위가 발생하면 공장 가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도 "공장 신설, AI 등 신기술 도입과 같은 고도의 경영상 결정에 수반되는 인력 배치 등을 교섭 대상으로 열어둔 부분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유연한 대응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협은 특히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메가프로젝트나 적기의 사업 재편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에서는 절차적 불확실성이 실질적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역시 "공장을 새로 짓거나 옮기고, 사업을 팔거나 신기술을 들이는 결정은 직원 배치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침은 이런 결정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직원의 업무나 근무지를 바꾸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면 그 부분은 교섭과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고 했다. 또 "기업 현장에서는 이 기준을 넓게 적용하면 투자와 경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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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업계의 우려는 더욱 구체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호남권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실제 가동하려면 기존 공장에서 수율을 잡던 숙련 엔지니어를 신규 라인에 제때 투입해야 한다. 신규 채용이나 외부 충원만으로는 생산 경험을 갖춘 숙련인력과 연구인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시운전과 초기 안전관리 단계에서는 설비 특성과 작업 위험요인을 숙지한 인력이 필요하다. 배치가 늦어지면 기술 전수가 지연될 뿐 아니라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에서 인력 재배치는 투자의 부수 업무가 아니라 곧 투자 실행 그 자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구체적인 인력 배치에 착수하면 교섭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전체 투자 일정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는 지난 7월 조합원의 84%가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에 반대한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하고 해당 사안을 2027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기업이익에 연동한 성과급 요구를 쟁의 대상에서 제외한 지침의 방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한상의는 "회사 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는 파업 등 쟁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정리한 점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경협도 기업 실적에 연동된 성과급이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다만 경총은 어떤 경우에 경영성과급이 근로조건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현장의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침이 경영성과급의 종류와 법적 성격은 일률적이지 않다고 설명했을 뿐,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유형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총은 판례가 경영성과급을 임금으로 인정한 유형과 요건을 지침에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재계는 행정지침만으로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보다 명확하고 안정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경협은 시행령 등 명시적인 법적 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고 지침 적용 과정에서 현장의 혼란을 줄이도록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도 기준이 실제 노사분쟁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도록 제도적 보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경총은 노동조합법상 노동쟁의 정의를 개정해 신규 투자와 설비 신·증설에 따른 통상적인 인력 배치는 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