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현대의 동남아 조선소가 수주 호조를 보이며 글로벌 상선 시장 공략의 전진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상선 시장에서 중국 조선사들의 가격 경쟁력에 대응할 거점으로 동남아가 떠오르는 양상이다. HD현대는 중장기적으로 동남아 생산거점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가 보유한 베트남·필리핀 조선소는 지난 1~8월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7척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4척 등 총 11척을 수주했다. 수주 금액은 10억2700만 달러로 두 조선소의 합산 수주 목표인 6억6000만 달러의 155.6%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수주액인 2억1900만 달러와 비교하면 4배 이상으로 늘었다.
동남아 생산기지를 강화해온 HD현대의 전략이 수주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HD현대는 동남아 최대 규모인 HD현대베트남조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베트남 당국과 생산부지 임대 기간을 2066년까지 20년 연장하기로 합의하며 현지 생산기지를 장기적으로 운영할 기반도 마련했다. 지난해 5월에는 필리핀 현지 법인인 HD현대필리핀을 설립했다.
이들 조선소는 HD현대가 중국 조선업계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육성하는 거점이다. HD현대는 모든 선종을 국내에서 생산하기보다 해외 생산기지를 활용해 상선 건조 기반을 넓힌다는 전략이다. 베트남과 필리핀에서는 유조선·컨테이너선 등 상대적으로 선가가 낮은 선박의 생산을 확대하고, 국내 조선소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중국 조선사와 직접 경쟁하는 상선 시장에서는 가격 대응력을 높이고, 국내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선박의 건조 역량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시장 환경도 유조선 중심의 수주 확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상반기 전 세계에서 발주된 VLCC는 총 177척, 5450만DWT(재화중량톤수)로 집계됐다. 2006년 한 해 동안 기록한 3260만DWT가 종전 최대치였는데 올해는 반년 만에 이를 넘어선 수치다. VLCC 신조선가도 척당 1억3000만 달러를 웃돌며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한결 키움증권 연구위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HD현대 해외 자회사의 신조 수주 호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HD현대는 수주 증가에 맞춰 생산능력 확대에도 나선다. 베트남 조선소의 연간 생산능력을 현재 15척에서 2030년 23척으로 늘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연간 30척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필리핀 조선소의 생산능력도 연간 4척에서 10척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해외 생산기지의 건조 물량을 늘려 글로벌 상선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확충한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생산거점 확대가 HD현대의 상선 시장 내 가격 경쟁력과 수주 대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