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산 저가 배터리에 밀려 고전하던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세계 각국의 규제 강화로 반전의 기회를 맞고 있다. 미국과 대만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고 유럽연합(EU)은 역내 생산을 우대하는 가운데 일본도 사이버보안 인증을 통해 시장 진입 요건을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에 이어 올해는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와 인버터 등 주요 전력망 장비의 공급망 안보 기준을 강화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특정 외국 주체와 관련된 장비의 구매·수입·설치 등을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비금지외국기관(Non-PFE)인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EU도 역내 생산 제품을 우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9월 산업가속화법(IAA·Industrial Accelerator Act) 수정 권고안에서 현지산 인정 범위를 기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등 제3국을 포함하는 방식에서 EU 27개 회원국 중심으로 제한하는 안을 제안했다. 역내 부가가치 50% 이상 기준과 공적 지원을 받은 제조시설의 EU 역외 이전을 5년간 제한하는 것도 담겼다.
IAA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국내 배터리업계는 셀뿐 아니라 소재의 역내 생산 역량도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진 SK온 ESS(에너지저장장치)사업실장은 "올 들어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던 국가는 유럽"이라며 "미국이 중국산을 배제한다는게 기본 목적이라면 유럽은 자국에서 생산하면 우대를 해준다는 개념으로 현지화 요구 수준을 강화하고 있는데 현지에 적합한 제품을 공급하고 사업하는게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배터리 3사는 유럽에 생산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55,000원 ▲17,000 +5.03%)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연간 80~90GWh(기가와트아워)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SDI(545,000원 ▲56,500 +11.57%)의 헝가리 괴드 공장 생산능력은 연간 약 40GWh로 추정된다. SK(518,000원 ▲12,000 +2.37%)온은 헝가리 코마롬 1·2공장(각각 10GWh·8GWh)과 이반차 공장(30GWh)에서 총 48GWh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대만은 사이버보안과 공급망 안정성을 이유로 중국산 ESS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태양광 연계 ESS 입찰에서는 중국산 일체형 ESS와 통신 기능을 갖춘 중국산 제어장비의 사용을 제한한다. 올해 마련된 산업용 ESS 설치 보조금 규정에는 대만산 배터리 셀 사용을 요구하고,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전력변환장치(PCS) 등 통신·제어장비에 중국 브랜드 및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도 사이버보안 인증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규제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ESS 보조금 지원 등에 사이버보안 인증제도인 'JC-STAR'를 적용하고 있으며, 내년 4월부터는 신규 전력망 연결을 신청하는 고압·특별고압 ESS의 통신 기능을 갖춘 제어장비에도 인증을 의무화한다. 중국산 제품을 직접 배제하지는 않지만 인증 취득 여부에 따라 시장 진입이 제한될 수 있어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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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는 일본 시장에서 사업 확대 나선 배터리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 일본의 관련 보안 인증을 취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 일본 내 ESS용 배터리 판매량을 2GWh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정면으로 가격 경쟁을 벌여서는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현지 생산 요건과 보안 인증 등을 통해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