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4년만에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관세·통상정책 등의 변화에 따른 우리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당장 AI(인공지능) 관련 규제 등이 강화되면서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 타격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메모리 호황'의 구조적 흐름은 견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의 중간선거 개표 결과를 주시하면서 주력 사업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하는 한 전반적인 관세정책 등에서 미국 행정부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등을 무력화하려면 상원에서만 민주당이 3분의2에 해당하는 67석 이상을 확보해야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급격한 노선 변화보다는 무역법 301조(보복관세 부과 등의 대표적 근거 조항)의 예외 적용과 같은 점진적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대미투자 집행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우리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늘어날 수는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대미투자의 예상 효과나 조건 등과 관련해서 청문회 등 의회의 관리·감독 조치가 더 늘어날 수 있고 이 경우 한국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업종별로는 먼저 반도체 분야에서는 무역확장법 제232조 확대 적용과 대중국 통제 등이 핵심 이슈로 꼽힌다.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제232조는 이번 선거 결과와 별개로 반도체에 추가 적용하기 어렵다는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미국의 주요 빅테크 기업 등이 반도체를 구하지 못하는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국 기업에 부담을 주는 조치를 취할 수는 없는 탓이다.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등 수출통제 역시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 초당적 컨센서스(합의)가 밑바탕에 깔려왔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 등이 달라질 수는 있다. 이시욱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경제연구총괄(전무)은 "트럼프 행정부는 거래적 방식으로 접근해왔고 민주당은 동맹국 간에 협력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기술통제 등을 강조해왔다"며 "우리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아울러 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투자와 관련해 민주당 소속 주지사의 제동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 미국 AI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의 30% 가까이가 집중된 텍사스주에서 데이터센터 공사 중단을 공약한 민주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되자 이날 미국의 AI 관련 주식이 급락한게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상황이 단기적 변수는 될 수 있어도 중장기적 걸림돌로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 자체를 발목 잡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향후 데이터센터 인허가와 전력망 확충 등 현지 AI 인프라 구축 속도에 일부 변수로 작용할 수는 있다"면서도 "AI 산업 육성과 인프라 확충은 미국의 기술 리더십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전략 분야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그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초당적인 정책적 지원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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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관계자도 "데이터센터 투자 일정이 조정될 경우 반도체 업계에도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 확대와 반도체 수요 증가라는 중장기적인 성장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역확장법 제232조가 적용되는 자동차·철강 등은 민주당 내에서도 노조와 지역구를 중심으로 자국 산업 보호에 대한 지지가 두터워 별다른 변수는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특히 자동차는 15% 수준의 한미 통상합의가 차질 없이 이행된다면 의회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예상한다.
로봇 분야에서는 대중통제가 강화되면서 우리가 반사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무역확장법 제232조 적용 대상으로 거론돼온 의약품·바이오 분야에서도 우리가 주로 만드는 복제약 등에서 고율의 관세 부가 피해를 볼 가능성은 현재로서 낮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이유가 고물가로 고통받은 민심이 공화당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차기 하원 의장이 유력한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원내대표는 앞서 밝힌 선거 승리 후 '100일 계획'에서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그만큼 소비재 쪽에서는 관세 완화 등이 기대된다.

방산 분야는 현재 미국 의회에서 다뤄지는 국방수권법 개정 논의 등을 살펴야 한다. 전투함을 반드시 미국 내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 비전투함은 미국 내 투자한 기업을 대상으로 일부 해외 건조의 예외를 허용하는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론나는지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신원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한국경제연구원 글로벌경제팀장은 "의회 구도 변화에 맞서 행정부가 행정 권한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산업계는 (선거 결과에 따른) 정책 환경 변화에 과잉 반응하기보다는 정부와 긴밀히 공조해 한미 제조업 협력이 상호 신뢰 속에서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공고할 것이라는 점을 미국 정·재계에 일관되게 전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