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수입국 페소·루피아 약세…필리핀 페소 달러 대비 사상 최저
AI 수출·에너지 수출국은 상대적 선방…한국 원화는 견조

국제유가 급등과 인공지능(AI) 산업 호황이 아시아 신흥국 통화의 양극화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통화는 약세 압력을 받는 반면, AI 수출 호황을 누리는 한국 원화는 2년여 만의 최고 수준에서 거래되며 역내에서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2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아시아 통화 가운데 가장 부진한 필리핀 페소는 이날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에너지 수입 비용이 늘면서 통화 가치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어서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사상 최저치에 근접했고, 태국 바트화는 18개월 만의 최저 수준에 가까워졌다.
반면 원화는 달러 대비 약 2년만의 최고 수준에서 거래되며 역내 통화 중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5원 내린 1323.1원으로 거래를 마무리했다. 이는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지난 2024년 10월 2일(1319.3원) 이후 2년여 만의 최저치(원화 강세)다.
말레이시아 링깃도 AI 산업에 대한 노출도와 에너지 순수출국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나타냈다.
국제 유가는 오르고 있다. 브렌트유는 지난주 배럴당 117달러까지 올라 지난 4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고, 26일(현지시간)에도 114달러 안팎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에너지 가격이 뛰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수입 비용이 늘어 무역수지가 나빠진다.
시장에서는 이런 통화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본다. 오랜 기간 기술 역량을 쌓아온 나라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라지브 데 멜로 가마 애셋 매니지먼트 글로벌 매크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기술 수출 호황의 혜택을 받는 경제권은 통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견조하게 유지될 것"이라며 "상쇄 요인이 없는 국가들은 에너지 수입 비용 상승과 글로벌 금융 여건 긴축에 점점 더 취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대응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현물환·선물환 시장에 직접 개입하고,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환헤지 인센티브를 확대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지난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동시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의 금리 차이를 확대해 페소 가치를 뒷받침하려는 조치다.
다만 한계가 뚜렷하다는 시각이 많다. 크리스토퍼 웡 싱가포르 화교은행(OCBC) 전략가는 통화 가치 하락 압력이 강해지면 외환시장 개입이 확대될 수 있고 인플레이션 위험이 지속된다면 추가 금리 인상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은행이 과도한 환율 변동성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통화 가치 하락 압력을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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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통화 약세는 아시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집트 파운드화는 이번 주 역외시장에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우간다 중앙은행도 26일 실링화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자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방어에 나섰다. 이는 해당 목적으로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지 말라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