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간선거]청년의 분노 미 선거 흔들다(하)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동부 베슬레헴. 한때 미국 철강산업의 심장이었던 옛 제철소 터에서 '루트 22' 국도를 따라 차로 10분쯤 달리자 주유소가 나왔다. 휘발유 가격표는 갤런당 4.19달러. 지난해 이맘때보다 40% 넘게 오른 가격이다.
픽업트럭에 기름을 넣던 트럭 운전기사 밀러(52)는 차창 안으로 영수증을 구겨 던지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를 찍었습니다. 공장을 살리고 물가를 잡겠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보세요. 부품값은 올랐고 기름값은 갤런당 4달러를 넘습니다. 일주일에 기름값으로만 40달러가 더 나가는데 이게 정말 우리가 바란 결과입니까."
밀러는 다음달 3일 중간선거에서 어느 당을 선택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을 되살리고 가계 부담을 낮추겠다는 약속에 기대를 걸었지만 매주 주유소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정치풍향계' 표심, 트럼프에 싸늘
펜실베이니아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뒷받침한 핵심 경합주다. 베슬레헴이 속한 노샘프턴 카운티는 1948년 이후 두 차례를 제외하고 대선 승자와 같은 선택을 해온 '미국의 정치 풍향계'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에서 50.37%를 얻어 카멀라 해리스 후보(48.66%)를 앞섰다. 노샘프턴 카운티에서도 8만9817표 대 8만6655표로 트럼프 대통령이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2년이 채 안 돼 분위기가 달라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의 여파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러스트벨트의 생산력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베슬레헴 인근 앨런타운 공업지대의 소규모 기계부품 가공업체 현장관리자 서맨사(44)는 "해외에 관세를 매기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수입 원자재와 부품 가격이 뛰면서 우리 같은 소규모 하청업체는 생산 비용만 올랐다"며 "이란 전쟁 이후 유가까지 오르면서 출고 물류비 부담에 출하를 미루는 날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관세 올리면 된다? 생산비 올랐다" 한숨
지역 경제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생활비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악순환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프랭클린앤드마셜대가 이달 중순 발표한 펜실베이니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5%가 1년 전보다 경제 사정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인근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던 한 여성 고객은 "지난해보다 마트 영수증에 찍히는 금액이 20~30% 늘었다"며 "월급은 제자리인데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마트 점원 젠킨스는 "손님들이 매장에 와도 선뜻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다들 월세 내고 기름값 내면 남는 돈이 없다고 하는데 정부가 기름값을 안 잡고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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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과 민주당이 관세 정책과 물가 등 경제 문제를 두고 연일 공방을 벌이는 것도 이런 민심 이반 때문이다. 민주당은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및 대외 정책 실패 탓으로 돌리며 표심 공략을 이어가고 있다. 공화당은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이 대외 변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고 관세 정책은 장기적으로 미국 제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필수적인 진통이라고 맞선다.
이념보다 호주머니 사정이 의석수 바꾼다
전문가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의 선택이 미국 정치 지형 전반에 미칠 파장에 주목한다. 경제적 실질 체감 지표가 약화된 상황에서 이른바 트럼프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전환될 경우 경합주 전반에 걸쳐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선거에서 펜실베이니아에 걸린 연방 하원 의석은 총 17석이다. 지금은 공화당이 10석, 민주당이 7석을 점하고 있지만 베슬레헴 중심의 제7선거구를 비롯해 제8선거구, 제10선거구 등 3~4개 격전지가 백중세를 보이고 있어 의석 구도가 순식간에 역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역 정치분석가인 크리스토퍼 보릭 리하이대 교수는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은 이념보다 당장의 호주머니 사정에 민감하다"며 "보호무역주의와 강경 외교가 실질적인 생활비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2년 전 트럼프 승리를 이끌었던 핵심 지역이 이번 선거에서는 행정부를 심판하는 쪽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