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한진重사태 해결, 노조 결단에 달렸다"
#"우리는 99퍼센트다!(We are the 99%!)"
지난 15일 토요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미국 맨해튼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반(反) 월가 시위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이다.
이들은 금융 자본의 탐욕과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시위 주최 측은 이날 82개국, 951개 도시에서 유사한 시위가 열렸다고 밝혔다. 사실 이번 시위는 미국 뉴욕에서 소수의 청년 실업자들로부터 촉발됐다. 이들은 "99%의 시민들이 1%도 채 되지 않는 월가의 탐욕을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금융시장 역시 세계적 금융투기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또 고용불안의 원인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자본주의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왜 취업 현장이 아닌 길거리로 나오게 됐을까. 우리나라 고용정책을 이끌고 있는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헝그리(굶주림, hungry)시대가 앵그리(분노, angry)시대로 변했다"고 진단했다. 16일 오전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집무실에서 이 장관을 만나 구체적인 얘기를 들어봤다.

- 미국 월가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주말 여의도에서 시위가 있었는데요,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아왔습니다. 그래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상대적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불만이 많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동일한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만 급여 등에서 차이가 많죠. 그런 부문에 불만이 쌓이면서 헝그리 시대가 앵그리 시대로 변했습니다. 미국 월가나 유럽에서 발생한 최근 시위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고용이 안 되는 사회, 금융자본만 늘 배부른 사회에 대해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죠. 정부는 정책적으로 국민들의 배가 아픈 일들이 적게 나타나게 해 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획일적인 평등을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실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성과에 대해 큰 기여를 했는데도 대접을 받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앵그리를 초래하는 일입니다.
- 그 시위에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의 지위가 불안하다는 의미라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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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볼 수 있죠. 청년들이 일자리를 못 찾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시장 미스매치 문제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우리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경향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죠. 또,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산업현장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들 중 11.2%가 희망하는 직업이 없다고 답했고, 중학생은 34.4%, 특성화고 학생은 38.3%에 이릅니다. 우리 학생들이 직업의 세계에 대해 모르고, 무조건 대학 진학에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학력 인플레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학력차별 해소와 열린 고용사회 구현 방안도 그래서 나온 것인가요?
▶ 네. 맞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9%입니다. 세계 최고죠. OECD국가들은 평균 56%입니다. 일본은 52.8%, 독일은 42.7% 정도입니다. 옛날엔 높은 교육열이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좀 다릅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쳤다면 그 교육이 값어치 있는 건데, 지금은 그냥 간판만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어요. 현장에 가보니깐 명문대 나왔지만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반면 고졸자 써보니깐 좋다고 하는 기업들도 많아요. 간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현장에서 더 느끼고 있는 것이죠. 성공의 열쇠는 간판이 아닙니다. 개인의 열정과 성실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간판이 좋아서 성공했나요?

- 우리나라가 성장해온 40∼50년 간 학력 인플레 문제가 있었는데 그게 쉽게 바뀔까요.
▶ 제가 예전에 행정고시나 고위공무원 인사 면접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블라인드 면접으로 진행했는데, 처음엔 막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능력 있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섰습니다. 사람을 볼 때 겉이 아니라 속을 파악하면 제대로 뽑을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 기업이 원하는 인재 상, 즉 필요한 사람을 뽑기 위한 직무역량 평가 모델이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단체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간판보다 실력으로 성공했다는 모범 사례를 많이 보여줘야 합니다. 고용부가 이런 성공 사례를 찾아서 알려줄 겁니다. 직무역량 평가 모델을 무료로 이용토록 보급도 하고, 민간 사례를 모아 확산시키는 역할도 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기업에 컨설팅 비용도 지원하겠습니다. 실력에 따라 사람을 뽑는 문화가 정착된 기업에게 사업장 근로감독 면제와 세무조사 면제, 정부 조달 사업 참여시 가점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청년 일자리 문제를 위해 정부가 지금 현재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게 있나요?
▶ 현재 청년취업아카데미라고 해서 기업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대학을 뽑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민간에서 인사·노무 부문에서 오래 일하신 분들을 취업지원관으로 선발해서 학교로 보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진로 지도를 하기 위해서죠. 또 우리나라에 괜찮은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취업을 준비 중인 학생들에게 정말 괜찮은 중소기업에 가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직접 가보면 의외로 좋은 회사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됩니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에 인턴으로 일해보고 나중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인데, 반응이 좋습니다. 정규직 전환율이 86%에 이르고, 1년 뒤에 남는 확률이 75%나 됩니다. 처음부터 대기업이 어디 있나요. 그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게 중요합니다.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여러 제도를 도입할 겁니다. 우수 중소기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구직자들에게 알려줄 계획입니다.
- 한진중공업 노사가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계에선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고 한다. 어떻게 봐야하나요.
▶ 노사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당사자들이 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문제는 노사 분규로 시작해 현재 정치·사회적 이슈로 복잡하게 이어졌습니다.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집회가 5차례 있었고, 민주노총 출신인 김진숙 씨가 고공농성을 9개월 넘게 하고 있습니다. 노사 당사자 간 문제에 그치지 않고 복잡하게 꼬여버린 겁니다. 난감하게 된 상황인데, 노사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도록 돌파구를 만들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제시한 권고안에 대한 말이 많아요.
▶ 환노위가 권고한 사항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취지나 내용은 명확합니다. 정리해고를 수용한 94명에 대해선 1년 후에 재고용하는 게 골자입니다. 생활 형편을 위해 2000만 원까지 지급을 지원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정리해고는 이미 한 상황에서 신규로 재취업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대승적·인도적 결단이죠. 정리해고한 사람을 안 받겠다는 게 아니고, 1년 후에 재고용한다는 것입니다. 권고안은 10월7일에 나왔습니다. 정확히 1년 후인 2012년 10월7일에 재고용되는 겁니다. 단 전제가 있죠. 이 권고안을 모든 당사자가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고공 농성자가 내려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 사측은 받아들였지만 노측이 문제인데, 노측이 권고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나요.
▶ 노사가 받아들일만한 권고안이라고 봅니다. 이 권고안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다시 노사문제로 환원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더 이상 노동계와 정치권에서 외부간섭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사자들에게 맡겨둬야 합니다. 회사에선 수용을 했고 노조만 남았는데, 수용하면 노사가 함께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 집니다. 노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수용하지 않으면 다른 저의가 있는 겁니다. 지난주에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새로 뽑혔습니다.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결과가 나오겠죠. 이번 권고안은 절묘한 균형점을 찾은 방안입니다. 노사가 자신들의 이익만 찾으려고 하면, 소탐대실하는 것입니다.
- 이번 권고안이 정치권의 압박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 한진중공업은 그동안 노사 갈등이 심화돼 일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이번 권고안은 조기 정상화와 고용안정을 위해 취해진 것이죠. 스스로 풀기 힘든 문제에 대해 국회 환노위가 균형점을 찾아준 것입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며 사측이 정치적 부담을 느끼진 않았을 것입니다. 국회가 한진중공업을 조기에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민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 복수노조가 시행된 지 100일이 좀 지났습니다. 평가 부탁드립니다.
▶ 지난 7월1일부터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돼 창구단일화가 작동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복수노조하면 나라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이 이뤄지면서 기존 노조가 채워주지 못한 부문이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노조는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복수노조제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