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기업 때리기' 결국 국민이 피해(2)

"한국이 먹고 사는 길은 수출이라는 신념 아래 글로벌시장에서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여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더니 정작 집에서는 몸집 커졌다고 박대받는 꼴 아닙니까."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주요 그룹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며 '재벌 해체'까지 거론하자 경제계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땀을 흘려 성과를 냈는데도 정작 국내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4대그룹 매출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년 전 43%였지만 지금은 51%"라며 대기업 중심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과 차이가 있다. 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감시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정중원 경쟁정책국장도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문제의 내용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대기업의 자산, 매출, 계열회사 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량적인 지표보다 정성적으로 이런 증가 내용이 수출이 늘어서인지, 신성장동력사업 육성 때문인지 등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력 집중을 거론할 때는 단순히 기업의 덩치가 커졌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LG, SK의 주력계열사를 보면 국내에 안주해서 배를 불린 게 아니라 해외 경제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결과물이라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지난해 매출 167조원을 달성한 삼성전자는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거뒀다.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78.54%에서 2008년 80.58%, 2009년 83.90%, 2010년 83.28%로 상승세다.
이 기간에 삼성전자의 매출은 98조원에서 167조원으로 70%가량 늘었다. 매출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특히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국부(國富)를 키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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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는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일본 소니를 제치고 TV부문 세계 1위로 올라섰고 핀란드의 노키아를 넘어 휴대폰부문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애플과 치열한 특허전쟁을 치르면서도 지난해 스마트폰부문 1위로도 도약했다.
1997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소니의 5분의1에 불과했다. 극복할 수 없는 벽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삼성전자의 시총이 소니의 3배에 달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
현대차나 LG, SK도 마찬가지다. '싸구려 한국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세계시장에서 선전한 결과 전세계 자동차업체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1990년대 말 현대차는 기아차와 합해 시장점유율이 세계 13위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글로벌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동차 전문 시장조사업체 IHS오토모티브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전세계 시장에서 65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이는 2010년에 비해 무려 14.6% 증가한 기록이다. 판매증가율은 상위 5개 업체 중 현대·기아차가 가장 높다.
현대차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 405만9438대 중 83%인 337만7210대를, 기아차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 253만8020대 중 80.6%인 204만6308대를 해외에서 팔았다. 10대 중 8대 이상을 해외시장에서 땀 흘리며 팔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매출 58조원을 기록했다고 이날 실적을 발표한 LG전자도 마찬가지다. LG전자의 수출비중은 85%다.
SK그룹이 잠정집계한 바에 따르면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SKC, SK케미칼 등 SK그룹의 주요 제조업 계열사들의 지난해 수출액은 45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매출 72조3000억원의 63%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이 발판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의 자산이 늘고, 계열사가 늘고, 매출이 늘어난 것이 단순히 정치권의 말처럼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해줬더니 국내에서 계열사 늘리고, 덩치만 키웠다는 얘기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치권의 논리대로라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업들이 수출하지 않고, 내수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기반으로 추산한 GDP 대비 30대 기업집단의 자산 비율 증가폭은 국내 전체 기업 자산 증가폭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2009년 GDP 대비 전체 기업들의 자산비율은 GDP 대비 151.2%에서 205.2%로 54%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30대 기업집단의 자산의 비율은 57.7%에서 91.7%로 34%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기업의 자산 증가폭이 30대 집단의 증가폭보다 20% 포인트 컸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