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戰 이맹희-이건희 회장, 삼성 후계 어땠길래?

소송戰 이맹희-이건희 회장, 삼성 후계 어땠길래?

오동희 기자
2012.02.14 12:13

이맹희씨, 상송재산 반환청구 소송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동생인 이건희삼성전자(216,000원 ▼1,500 -0.69%)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두 사람간의 삼성 후계 역사가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호암 이병철 회장이 삼성의 후계자를 누구로 할 것이냐에서부터 시작됐다.

1970년대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은 암 판정을 받은 후 '삼성호'를 이끌 후계자 찾기에 오랜 고민을 거듭했다.

호암은 일본경제신문 한국특파원인 야마자끼 가쓰히코에게 1970년대말 후계와 관련해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삼성은 업종과 분야가 다양하고 사원이 많다. 대리점과 납품업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어떤 실수라도 생기면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삼성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일에 관한 원모심려(遠謀深慮: 원대한 꿈과 깊은 생각)는 내 뇌리에서 떠난 적이 없다. 지난 수십년간 그 생각을 했다."

"장남이나 차남에게 계승할 생각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둘 다 단념하고 삼남인 건희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러한 방침 아래 1970년대초에 법적, 제도적 절차를 끝냈다."고 소개돼 있다.

호암은 1971년 1월 유언장에 이처럼 후계에 대해 정리했다. 그는 유언장에 "장남 맹희는 경영에 흥미가 없다. 차남 창희는 회사가 많은 것을 싫어한다. 그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삼남 건희는 처음에는 싫어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역량은 없지만 해보겠다'고 말했기에 건희를 후계자로 지명한다. 그리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다"고 적었다.

호암은 이런 유언장에도 불구하고, 후계자에 대한 공식 언급이 없다가 1976년 9월 위암을 발견하고 일본에서 수술을 마친 후인 1977년 8월 첫 언급을 했다. 호암은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후계자를 결정했느냐는 질문에 "네 이미 결정했습니다. 신문과 방송 쪽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 셋째 아들 건희(당시 37세)로 결정했습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처음 후계를 언급했다.

그 과정에서 장남인 이맹희씨와 차남인 이창희씨는 한국비료 사건과 청와대 투서사건 등으로 호암의 눈 밖에 나 있는 상황에서 삼남인 이 회장이 후계를 물러 받게 됐다.

호암이 1987년 11월 19일 타계한 후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고 계열분리작업을 본격화해 1994년 삼성그룹의 모기업 중 하나인 제일제당은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게 넘겼다.

계열분리는 이맹희씨의 부인 손복남씨 명의로 돼 있던 삼성화재 지분과 삼성이 보유했던 제일제당 지분을 맞교환하면서 매듭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이맹희씨는 모든 경영에서 손을 떼고 몽골과 중국 등지로 돌면서 국내에는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분리 과정에서 이미 상속문제는 마무리된 것으로 안다"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계열분리 직후 이건희 회장은 조카인 이재현 회장의 경영을 지원하도록 이학수 당시 사장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로 파견했으나, 이재현 회장 측이 반발하면서 갈등 양상을 빚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삼성이 포스코와 손잡고CJ(214,500원 ▲1,000 +0.47%)컨소시엄과 경쟁하면서 양측간 갈등이 표면화됐다가 CJ가 인수하면서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이번 소송과 관련해 삼성과 CJ 측은 '개인 대 개인간' 소송이라며 선을 그어 양 그룹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해선 신중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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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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