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의 후임으로 최성준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내정됐다. 지난 14일 청와대발 내정 뉴스가 뜨자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과거 판결기사 검색을 시작했다.
무심코 '최성준'이라는 이름만 입력한 게 내 불찰이었다. 서울대 출신 배우 '최성준'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검색면 하단의 '다음페이지 보기'를 클릭하고, 클릭해도 판사 최성준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배우 최성준이 소시오패스 연기를 리얼하게 보여줬다는 기사가 100여 건 보이더니, 그가 멘사 회원으로 밝혀졌다는 기사가 수백 건 펼쳐졌다.
배우 최성준이나 그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김연아처럼 전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에 이처럼 기사가 흘러넘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몇 달의 간격을 두고 특정 사안(대부분 전날 TV프로그램에 언급된 내용)에 대해 수백 건의 기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그렇다.
언론사별 기사에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한 언론사가 같은 주제로 기사를 수십 건 쓴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 메이저 신문의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지난해 11월14일 작성된 최성준의 IQ에 대한 기사만 23개 올라와 있다.
그렇다. 포털에서 인기검색어로 뜨면, 그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는 검색어 뉴스 장사, '어뷰징'의 결과물들이다. 포털로 기사를 검색해 언론사 사이트에 접속하고, 페이지뷰가 곧 광고수입으로 이어는 구조가 만들어낸 한국 언론의 자화상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즈는 로봇이 기자의 일자리도 대체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보도했는데, 한국에서는 '어뷰징 기사'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 조만간 도입되지 않을까 한다.
이미 야구경기가 종료된 이후 경기 결과를 자동으로 요약해 기사를 쓰는 소프트웨어인 '스탯몽키(StatsMonkey)'라는 것도 나와 있다. 어뷰징 기사를 만드는 것은 야구 기사를 쓰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실시간 포털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오른 단어가 들어간 최근 기사를 찾아 일부 문장 순서, 단어 표현을 변경한 뒤 제목에 '충격' '알고보니' '경악'과 같은 단어를 달면 끝이다.
지금은 'Ctrl+C'와 'Ctrl+V'를 하기 위해 마우스, 키보드를 누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기사를 만들어내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지만, 기사 작성 프로그램으로는 1초에 수만 건 기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우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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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라. 언론사들이 기자 채용이 아니라 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기사를 생산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그 경쟁은 '판사 최성준'에 대한 기사를 찾는 데 한참이 걸리게 했던 것처럼, 독자가 사실에 접근하는 데 어렵게 하기 위한 경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