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떼법' 부르는 사회

[우리가 보는 세상]'떼법' 부르는 사회

양영권 기자
2014.04.14 07:30

J는 수원시 외곽에 살고 있다. 지금은 수원이지만 J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화성군에 속했다. 주변은 온통 포도밭과 벼논이었다. 가까운 국철 역까지는 30여분 자전거를 타고 나가야 했다. 당시 대성리에 MT를 가면 민박집 방을 하루에 3만원에 빌렸는데, J네 집 문간방의 월세가 3만원이었을 정도로 집도 허름했다.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J의 동네 근처엔 아파트와 대형 마트, 관공서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8차선 길이 났고, 시외버스 터미널도 생겼다. 하지만 J의 동네는 거의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J의 집도 부엌과 거실을 고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다. 세월이 비켜간 건 1977년부터 그린벨트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J는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취직을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아 그만뒀고, 이웃에 사는 사촌 형들의 도움을 받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해결한다.

그런데 내년이면 J는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 온 이곳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수원시가 이 곳 일대 35만2000㎡에 '서수원 R&D 사이언스 파크’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개발 계획이 선 곳에 집과 텃밭을 갖고 있는 J는 '대박'을 맞았을까. 현실은 그게 아니다. 공용수용 보상금은 많아 봐야 공시지가의 2배다. 그런데 40년 가까이 그린벨트로 묶인 탓에 공시지가는 평(3.3㎡)당 70만원 수준이다. 그린벨트가 아닌 옆 땅은 수백만원을 넘긴다고 한다. 보상금을 받아 세금을 내고 나면 주변에서 아파트 한 채 구할 수 없다. 그동안 재산권을 침해당하고 산 것도 그런데, 팔 때도 헐값에 팔아야 하는 것이다. 친척들도 흩어지게 돼 아픈 몸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

억울한 마음에 J는 변호사를 찾았다. 변호사는 '법'으로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 일단 대자보를 쓰고, 시청 앞에 가서 '드러누우라'고 귀띔했다. J는 이제 대학 신입생 때 이후 처음으로 거리로 나서기로 결정했다.

관공서 주변이나 대규모 광장에서 시위가 빈번한 요즘, 그들의 목소리가 관심을 끌기는 쉽지 않다. '떼법',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중에는 절박한 처지에 마지막 방법으로 '떼쓰기'를 선택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법질서 확립'이 강조되는 앞으로는 J같은 이가 목소리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쉽게 잊지만 재산을 뺏은 사람은 여간해서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재산을 몰수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법대로' 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지고,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되는 사회일까. '법질서 수호'의 중요성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억울함이 없도록 신중하게 법제도를 마련해 적용하는 것도 그에 비례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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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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