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8.26. bjko@newsis.com /사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5/09/2025090214562245296_2.jpg)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몰아세우며 한 말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굴욕적 종전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 장면은 몇 가지 사실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각인시켜줬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과 협상을 하려면, 동시에 초강대국의 리더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스트롱맨에 가까운 인물이라면, 약소국 입장에서 반드시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젤렌스키의 굴욕'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걱정도 증폭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 농축산물 개방, 중국과 무역 문제, 대미 흑자, 추가 관세 적용 등을 거론하며 대대적 압박에 나설 경우 외교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도 적잖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 우린 그곳에서 사업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을 때 우려는 최고조에 달했다.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아무런 돌발상황 없이 전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글을 "오해였다"고 일축했고, 이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친구"라고 추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을 매혹시켰던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듯 한국이 준비했던 카드는 '기업'이었다. 삼성, 한화, HD현대, 두산, 대한항공, 고려아연과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모두 나서 조선·원전·항공·에너지·광물 등에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의 힘이 곧 국력이고, 협상의 원동력이 되면서, 대한민국이 가진 최고의 카드임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제조업 부활을 꾀하는 미국 입장에서 우리 기업이 제시하는 카드를 거부하기 어렵다. 실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반도체 △현대차의 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배터리 등은 이미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한미 정상회담에 동행했던 한 기업의 임원은 "미국이 생각보다 우리 기업들의 밸류체인 내 역할에 대해 많은 스터디를 한 상태였다"며 "한국 기업과 손잡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 '카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핵무기도, 수 억명의 인구도, 넓은 영토도, 군사적·국제정치적 패권도 없다. 석유도 식량도 수입에 의존한다. 글로벌 밸류체인, 특히 '미국의 블루팀' 내에서 기업들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기업의 힘이 떨어지면 언제든 미국 등 패권국으로부터 "너희의 카드는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런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등 기업 옥죄기 법안이 연달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경제 보다 이념이 앞선다면 우리가 가진 카드의 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보완입법이라도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이재명 정부가 국제관계에서 더 힘 있는 카드를 쥐는 것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