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환 돌파구, 독일에서 찾다] 기업 경쟁력 높이는 녹색전환(종합)
-차량·전력반도체 기업 인피니온의 탈탄소 전략

최근 다녀온 전세계 전력·차량용 반도체 1위 기업 인피니온 테크놀로지스의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사업장. 약 30만㎡(약 9만 평) 규모의 거대한 단지 안 '마인홀트슈트라세 2번지' 주소가 적힌 사무동에 들어서자, 임직원들의 발길이 빈번하게 오가는 내부 전광판에 한 문구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탈탄소화와 디지털화를 함께 주도한다(Driving decarbonization and digitalization. Together.)'
일상 공간에서부터 전사적으로 강조되는 이 메시지는 탈탄소화가 단순한 선언적 구호가 아닌 인피니온의 경영 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는 반도체 제조업이 전면에 탈탄소화를 핵심 목표로 내세운 것이다. 유럽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복합단지) 실리콘 작센의 중심에서 실현되고 있는 제조업 녹색전환(GX)의 단면이다.

◆ "기업, 지속가능한 에너지 투자해야 회복탄력성 지켜"
지난달 21일 인피니온 드레스덴 사무동에서 만난 팔코 횐스도르프 인피니온 드레스덴 기술 부문 부사장은 "인피니온이 추구하는 두 가지 주요 기업 비전은 탈탄소화와 디지털화"라고 재확인했다. 탈탄소화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동시에 탈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기업에 실익을 안겨주는 전략이라는 현실도 명확히했다.
횐스도르프 부사장은 "20세기 산업은 석유·가스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과 분쟁에 의해 형성됐다"며 "21세기에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국가의 회복탄력성과 주권을 지키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태양과 바람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자원"이라며 "이제 과제는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이 아니라, 이(태양과 바람 에너지)를 수확하는데 투자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 지속가능성, 경제적으로 실행가능
비용적 관점에서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가능한 선택지가 됐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횐스도르프 부사장은 "오늘날 재생에너지와 기존 에너지 사이의 상충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지속가능성은 경제적으로 실행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같은 전사적 목표는 수치로 입증됐다. 인피니온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총 에너지 소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89%다. 스코프2(전력·스팀 등의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 온실가스 배출량(시장 기반)이 2025년 1만0345 tCO2e로, 기준연도(2019년) 보다 98.8% 급감했는데, 이 원인이 바로 전력을 대부분 재생에너지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기준연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00으로 뒀을 때 72만큼의 감축이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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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부터 공정연료까지 탈탄소화
전력 분야 탈탄소에 진전을 이룬 인피니온은 생산시설의 공정연료도 탈탄소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드레스덴 부지 내에서 기존부터 가동 중인 기존 공장(모듈 1~3) 지붕의 천연가스 버너 시스템을 향후 2~3년 내에 전면 전기화 기기로 교체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드레스덴 생산 기지 전체에서 가스 사용량을 줄인다.
드레스덴 부지에 총 50억 유로(약 7조4000억원)를 투입해 건설 중인 신규 공장 '모듈 4(스마트 파워 팹)'의 경우 최고 등급의 친환경 건축물 인증인 '친환경 건축물 인증(LEED) 인증'을 목표로 설계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인피니온에게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것은 환경적 필수 요건이자 사업의 필수 과제"라며 "시스템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임으로써 탄소 발자국과 운영 비용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 탄소배출↓→공급망 경쟁력↑
같은 현장에서 만난 안드레 타우버 인피니온 전략·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총괄 역시 탈탄소화가 기업의 자발적 미션을 넘어 경영 전략의 일환이란 점을 주목했다. 그는 "탈탄소화는 단순한 사명이 아니라 사업모델의 핵심 요소"라며 "우리는 업계의 '퍼스트 무버'로서 제품 탄소 발자국(PCF) 데이터를 고객사에게 투명하게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등 인피니온의 대형 고객사들이 자사 제품의 친환경성을 시장에 홍보하고, 자체 공급망 내 배출량(Scope 3)을 감축해야 하는 요구를 관통한다. 인피니온이 공급망 전 단계에서 녹색 전력을 우선 조달하고 최고 수준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투명성을 보여줄 때 비용에서 현격한 차이가 없다면 고객사들은 인피니온의 칩을 선택하게 된다.

◆ "기업, '분기별 실적' 이상의 책임 있어"
과거에는 환경 투자가 단기적인 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의 산업 구조에서는 선제적인 탈탄소화가 곧 중장기적 원가 절감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우위를 갖는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인피니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 공정 효율화로 에너지 총소비량이 줄어들면 탄소 발자국이 감소되고 기업의 운영비용(OpEx) 역시 구조적으로 떨어진다. 이는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사업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횐스도르프 부사장은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가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분기별 실적' 이상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재생e 앞세운 데이터센터 전략

독일 정부는 데이터센터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꼽고 있다. 막대한 전력을 쓰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산업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접근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에 에너지전환을 선순위 목표로 두고 그 위에 데이터센터 전략을 결합해 정책 정합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 "100% 재생전력이 목표"
지난 3월 독일 내각을 통과한 디지털·국가현대화부(BMDS)의 '데이터센터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용량을 최소 2배로 늘리고, 고성능컴퓨팅(HPC)과 AI를 위한 컴퓨팅 용량도 4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은 이미 용량·수 기준 유럽 최대 데이터센터 시장 중 한 곳이다. 100킬로와트(kW) 초과 데이터센터가 약 2000개, 5메가와트(MW) 초과 대형 데이터센터가 약 100개가 있다. 독일의 IT 접속용량은 2980MW이며 이 중 약 500MW가 AI용이다.
BMDS 보고서는 데이터센터 전략의 3대 정책 목표를 △에너지와 지속가능성 △입지·부지 △기술과 주권으로 제시하며 "'에너지와 지속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고, 감당가능한 가격이며, 환경친화적 방식으로 에너지를 데이터센터에 공급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에너지효율·재생에너지·폐열 이용·물 절약형 냉각 시스템이 지속가능성과 공급안정성의 핵심 지렛대이며 입지선정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돋보이는 대목은 높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율·에너지 효율을 자국 데이터센터 산업의 경쟁력으로 평가한 부분이다. 이 보고서는 정책 목표 중 하나로 "독일을 완전히 재생전력으로 공급되는 에너지효율적인 지속가능 데이터센터 입지로 강화한다"고 명시했다.

◆ 높은 재생e 접근성·에너지효율이 '강점'
독일 정부는 이미 에너지효율법을 통해 2027년 1월부터 모든 데이터센터가 전력 수요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장부상 충당할 것을 의무화했다. 장부상 충당은 데이터센터가 24시간 실시간으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기에서 나온 전력만을 직접 유입해 쓴다는 뜻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기존 전력망의 믹스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되, 자신들이 사용한 총 전력량만큼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전력구매계약(PPA)이나 인증서 구매로 시장에서 조달해 회계상 상쇄시키는 방식을 의미한다.
재생에너지 100% 장부상 충당 이행을 위해 독일 정부는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재생에너지로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강화하고 있다. 또 사업자의 전력요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재생에너지법(EEG) 관련 비용·망 비용에 대한 정부 보조를 지속하고 있다.
에너지효율도 계속 높여 나가고 있다. 독일 데이터센터는 2010년 약 1.8대였던 전력사용효율(PUE)을 1.43까지 개선했고 에너지효율법을 통해 이를 1.2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서버를 돌리는데 100이라는 전기가 필요하다면, 열을 식히는 냉각팬·조명 등에 80의 전기를 추가로 썼던 것을 43까지 줄였는데 이를 20으로 더 낮춘다는 의미다. 이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평균 PUE(약 1.55 ~ 1.58) 대비 크게 우수한 효율이다.
독일 정부는 아울러 데이터센터 운영의 부산물인 폐열을 지역사회 열 공급에 통합하는 과정의 실효성도 높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부는 이 과정에서 데이터센터 운영자에게 부과됐던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EU)과 협의, 폐열 무상 제공에 대한 비과세 조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