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일본의 지진, 한국의 '화이트데이'

[기자수첩]일본의 지진, 한국의 '화이트데이'

박희진 기자
2011.03.18 08:01

평온했던 일상을 덮친 일본 대지진의 참사가 벌어진 지 사흘째 되던 지난 13일. 명동 인근에 있는 한 편의점을 찾았다. 일본 대지진으로 명동 상권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에 명동 일대 백화점, 화장품·의류 매장, 식당 등을 돌며 현장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쪽은 어떨까 해서 들러본 매장이었다.

평소 일본 손님의 이용이 잦았던 곳인데 이날 일본인 손님은 한명도 없었다. 대신, 직원만 네 명이나 나와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손님이 없는데도 이날 매장 직원들이 총출동한 이유는 화이트데이를 하루 앞둔 날이었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에서 화이트데이는 최고 대목으로 통한다. 편의점 직원들은 하루 전부터 '결전의 날'을 위해 물량확보, 매대 설치 등 제반 준비로 바쁘다. 'D-데이'가 밝으면 편의점 앞은 화이트데이 판촉전으로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편의점앞 길까지 막아설 정도로 큰 매대를 설치하고 핑크 일색의 사탕·초콜릿 바구니와 판매직원들의 호객행위가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 '남심'(男心)을 유혹한다.

화이트데이 다음날인 15일, 편의점 1위 업체인 훼미리마트는 가장 먼저 보도자료를 냈다. 화이트데이 매출이 113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훼미리마트의 화이트데이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는 자화자찬도 곁들였다.

물론 유통기업이 대목을 맞아 장사를 열심히 한 건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웃 일본이 국가적 재난을 맞아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애용하는 편의점 업체가 '화이트데이' 같은 한가한 이슈로 지나치게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화이트데이가 대목인 식품업계가 요란한 홍보를 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대지진의 피해를 보여주는 사진에서도 편의점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은 편의점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그런만큼 일본인에게 편의점은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배용준을 비롯해 한류스타들이 일본을 위해 기부금 쾌척 릴레이에 나섰고 각계 기업들의 일본 돕기 행렬도 줄을 잇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 편의점 업계는 일본 지진 피해 구호와 관련해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런 가운데 업계 1위이자 일본훼미리마트가 주요주주인 훼미리마트는 화이트데이 특수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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