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등 증인 불러놓고 호통치는 국감은 그만…품격있는 국회 언제쯤 볼수 있을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한국어가 서툴다. 일본에서 나고 성장했고, 20~30대 대부분을 일본과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보냈다. 1977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를 마치고 1980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도 일본계 기업이다. 1981년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 입사했다. 한국에서는 1990년 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 상무 이사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나이 35세였다.
신 회장은 한국어가 서툴지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와중에 불거진 '일본기업 논란' 얘기를 듣고 '롯데는 한국기업'이라고 단언할 만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주위에서 지켜본 임직원들의 평가다.
신 회장은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드러난 지배구조 불투명성과 특혜의혹, 국적논란, 병역문제 등이 거론될 전망이어서 롯데그룹을 긴장시키고 있다.
롯데그룹은 예상 질문을 수시로 업데이트해 신 회장에게 보고하고 있다. 신 회장은 예상 질의에 따른 관련 답변 내용을 숙지하는 등 국감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국감장에서 '일본계 기업' 논란에 대한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5대 재벌그룹 총수가 '일본인'이라는 핵심을 벗어난 질의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듯하다. 세간에는 '국감장에서 신 회장에게 애국가를 불러보라'고 요청하는 의원이 나올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신 회장은 '재일동포 2세'다. 일본에서 성장했지만 한국에서 재계 10위를 밑돌던 롯데를 5위까지 끌어 올린 주역이다. 국내 투자도 해마다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올해만도 7조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고용도 1만60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인이라면 해마다 수 조 원대의 막대한 자금을 한국에 쏟아 붇기 힘들다. 마음 속 깊은 곳에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애국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극단적으로 일본인이라고 한들 어떤가. 한국인 사업주 중에서도 노동자들을 눈물짓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적을 따지기보다 한국에서 고용과 투자를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기업주가 애국자 아닌가.
물론 대기업 회장도 의원들이 물을 것이 있으면 당연히 법률에 따라 국회에 출석해야 한다. 지배구조 불투명성과 경영권 분쟁 가운데 드러난 문제점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총수의 국적을 놓고 '어설픈 애국심'에 호소하는 일은 한국의 품격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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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17일 국감장에서 본질에서 벗어난 '막말'과 '호통'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의원들은 호통을 쳐야 권위가 산다고 여기는 듯 하다. 아까운 시간을 줄여 출석한 증인에게 답변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소리만 지르고 끝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인격 모독성 발언이나 호통, 비아냥을 듣는 것은 불편하다. 본질에서 벗어난 질의와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식의 호통은 국민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호통과 고성보다는 조근 조근 말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질의가 증인을 서늘하게 한다.
과거 '옷로비 의혹 사건'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웃음 지었다. 이제는 고인이 됐지만 한 인간의 인격을 말살하고 국민적 웃음거리를 만든 '국회의 수준'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