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 개점이 일주일 미뤄지면서 전단지 비용 100만원을 날렸습니다. 플래카드도 버렸어요. 임대매장 상인도 중소상인인데 제가 뭘 잘못했나요?"
2014년 홈플러스 세종점 오픈 때 한 임대매장 상인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지역 상인들의 횡포가 지나쳐 임대매장 상인은 물론 중소 납품업체까지 고통스럽다며 울분을 토했다. 특히 세종시 발전 기대감에 외지에서 1년 전 이주해온 상인들이 지역 중소상인으로 둔갑해 대형마트 개점을 방해한다며 격앙돼 있었다.
당시 홈플러스 개점에 반대했던 세종시서남부슈퍼마켓사업협동조합이 요구한 상생발전기금은 20억원. 대형마트를 열어 달라는 주민들의 민원까지 쇄도했지만 갈등은 홈플러스가 과태료 5000만원을 부담하면서 점포 오픈을 강행한 후에야 일단락됐다. 이후에도 대형마트 출점 때마다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이렇다 보니 신규 출점 소식을 극비에 부치는 것이 대형마트 업계 관행이 됐다. 미리 알려지면 주변 상권이 들썩이면서 상생 협의 대상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의 횡포'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까 염려하는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한 '을의 횡포'가 종종 목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 지난 11일 발표된 서울시 경제민주화 특별시 선언이 유통업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서울시는 앞으로 대형 유통업체가 출점 계획을 세울 때부터 상생 특별전담기구(TF)를 설립해 지역 상인들과 상생협의를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상권영향조사를 발주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형마트 업계는 이미 유통산업발전법을 통해 출점과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를 받고 있다. 신규 점포 오픈 전 업체가 상권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점포 개설등록 한 달 전에는 자치구에 주변 상권과의 협력계획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유통법 역시 골목상권 살리기에는 부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전통시장 매출액은 2010년 21조4000억원, 2012년 20조1000억원, 2014년 19조9000억원으로 규제에도 불구,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규제만 강화할 경우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시장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대형마트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납품업자, 마트 근로자 등 행정당국이 지켜줘야 할 또 다른 약자도 존재한다. 한 업계를 살리기 위해 다른 업계를 규제하면 된다는 식의 이분법 논리가 통하는 시대는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