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입문과정에서 늘상 나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류 최초의 직업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창조라는 관점에서 건축가라는 답변도 있고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이브를 만들었다는 대목으로 의사라는 답도 있다. 정답은 정치가(인)이다. 단서는 ‘태초에 혼돈(카오스)이 있었다’는 성경 구절에서 나온다. 즉, 그 혼돈을 누가 만들었겠냐는 일종의 넌센스이다.
하여튼 정치인들의 시계는 남달라 보인다. 미국 국가부도(디폴트)라는 초유의 사태로 몰고간 미 정치권도 다를 바 없다. 디폴트 시한인 2일 막바지까지 전개된 공화, 민주 양당의 세대결은 서부활극 영화 ‘하이눈’을 연상시켰다. 총성이 울리기 직전, 여야는 극적 타협에 성공했지만 이들의 치킨게임에 멍든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와 그 울타리에 안주하는 미국민들이다. 자신들은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벼랑끝을 향해 질주하는 제임스 딘처럼 멋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속만 탄게 아니다. 실제 세계 최대 경제국이라는 명성에 큰 흠집이 갔다. 떠들썩한 부부싸움에 집안의 허접한 살림살이든지 치부가 동네방네 다 들어난 격이다. 비록 미국이 디폴트라는 파국은 면했지만 미 최고 국가신용등급은 강등될 수 있다는 것이 월가의 대략적 판단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S&P)와 무디스 등은 미국이 임시 방편으로 채무한도를 올려 디폴트는 피하더라도 균형재정을 맞춰갈 위기 관리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미국의 최고 국가 신용등급이 박탈된다는 것은 현대사에 일대사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의 위상이 흔들린 미국이 슈퍼파워로서 마지막 간직하던 군사, 문화 강국의 지위마저 내놓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한 단계 떨어져 더블A 등급이 되면 중국과 같은 레벨의 신용국가가 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아직은 10~ 20년차 한 수 아래로 중국을 내려다 보던 미국으로서는 가문의 망신이다. 그나마 세계 1, 2, 3위 경제대국(G 1,2,3)인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모두 동급이라 점이 작은 위안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세계 금융시장에 불러올 파장은 그 파괴력이 예측 불허이다. 이전 일본 등지의 사례를 들어 제한적일 것이라는 낙관적 시각에서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처럼 전대미문의 메가톤급 후폭풍이 우려된다는 ‘둠스데이’ 시나리오까지 극단을 보인다.
어쨌든 미 정치권으로서는 3억 자국민 뿐 아니라 전세계 50억인구 전체를 볼모로 너무 위험한 게임을 벌였다는 지탄을 면키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의 PICK!
정치권의 '불장난'은 이웃 일본에서도 골머리이다. 지난 3월 11월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진행형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후 최대 위기를 맞은 일본도 늘어나는 국가부채와 20년째 치달은 장기 경기침체의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보다도 국민의 애를 끊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권의 괴리감이다.
그 생뚱함의 한 가운데에 간 나오토 총리가 있다. 대참사 수습과정 중 갈팡질팡한 대응으로 국민 신뢰를 한껏 잃은 그가 다시 가벼운 입놀림으로 일본인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간 총리는 지난달 안전을 이유로 향후 원전 정책을 제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안전 점검을 이유로 원자로의 가동 중단을 지시했다.
시중에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가득이나 부족한 전력난에 휴일규정을 바꾸는 등 비상대책까지 마련해야 했던 산업계의 반발은 더욱 극심했다. 화가 난 게이단렌(일본전경련)은 급기야 매년 총리가 참석하던 포럼행사에 간 총리를 초청하지도 않았다.
결국 간 총리는 개인적 견해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고조된 불확실성은 국가대사마저 그르칠 지경으로 내달았다. 바로 터키 원전 수주건이다. 앞서 한국을 따돌리고 얻은 터키 원전 우선협상자 지위가 날아가게 될 판이라고 일본 언론들마다 걱정이다.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난데없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가 쫓겨난 일본 자민당 우파의원들의 돌출행동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민관이 하나가 돼 재해복구에 나서도 부족한 판에 자신들의 잣대인 '표(票)플리즘' 에만 치우치는 정치권을 대하는 시선들이 오히려 걱정스러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