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자라면 대외거래를 확대하는 FTA에 대해 본능적으로 긍정적 태도를 보인다. 자발적 교환은 자발적이기에 이익을 낳는 것이고, FTA는 그런 자발적 교환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과학과 이론의 영역이다. 기예(art)가 필요한 현실은 그러한가? 사실관계를 따져보자.
1990년대말 이미 선진국 수준까지 개방했다는 금융산업의 10년 넘는 경험부터 보자. 외국계은행의 국내지점은 국내은행(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포함)에 대비해볼 때 자산은 11%대, 순이익은 16% 이상을 차지한다. 돈은 제대로 벌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 외은지점은 소매금융을 취급하지 않고 중소기업대출 의무비율 등에는 무관심하며, 외환위기 때는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한때는 외국계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지나치자 금감원에서 따로 불러 자제를 요청한 적도 있다. 금융개방으로 우리나라 금융이 얼마나 선진화했는가를 따질 만한 내용조차 없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부문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80위에 머물렀다.
농업분야는 익히 알고 있다. 2009년 한·칠레 FTA 체결로 칠레산 와인에 부과하던 15%의 관세가 사라졌다. 그런데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칠레산 '몬테스알파' 1병의 2011년 가격은 2008년보다 16%나 올랐다. '몬테스알파'의 현지 가격은 8400원 정도고 운송비 등을 포함하면 국내 수입원가는 1만원 내외라 한다. 유통단계가 복잡하고, 수입업자가 기존 도·소매상의 판매노하우를 뛰어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나 그래도 설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금융업에 앞서 1996년에 이미 완전개방에 나섰던 유통시장은 어떠한가. 개발도상국 출신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경제론을 강의할 때면 우리 기업이 얼마나 뛰어난 전략을 보이며 글로벌 대형유통업체를 물리쳤는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는 주제다. 하지만 우리의 산업구조, 중소기업, 그리고 소득분배문제를 다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후자의 주제를 다루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조업이다. 지난 7월 발효된 한·EU FTA는 정말 놀라운 효과를 낳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EU는 재정위기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자동차를 살 만한 여건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2008년 이후 자동차의 EU지역 수출은 크게 감소해왔다. 그런데 올해 10월까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EU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0% 이상 늘었다.
외국자본의 진출과 경제성장의 관계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내수시장에 주력하는 산업이나 경쟁으로부터 보호되어 독과점구조를 보이는 산업이나 보조금에 의존하는 산업의 경우 외국자본의 진출은 그 이득이 크지 못하며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손실조차 야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 그대로다. 이는 회수 남쪽인 강남의 귤나무를 회수 북쪽에 옮겨 심으면 척박한 환경 때문에 탱자처럼 조그맣고 딱딱해지기에 생겨난 말이다.
결국 농업, 서비스업 그리고 수출 제조업에서 우리가 겪고 있고 또 겪을 일들은 시공을 넘어 늘 있어왔던 일반적 현상이다. 왜 그럴까. 해외진출의 성공비결은 현지화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기업은 국내시장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성패가 갈리기에 국내기업과 산업의 행태와 관행을 더 철저히 따를 것이다. 늦게 배운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장밋빛 청사진이나 섬뜩한 공포영화를 감상하기에는 산업과 서민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FTA 찬반에 분출하는 그 에너지를 우리의 기업, 산업, 행정, 그리고 정치에 찌들어 있는 구태와 관행의 혁파로 돌림이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