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명분싸움 보다 중요한 것

[광화문] 명분싸움 보다 중요한 것

원종태 산업2부장
2014.01.0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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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년, 높이 55m의 오사카성은 그 자체가 난공불락이었다. 이 요새의 압권은 20미터가 넘는 석벽으로 둘러쌓인 깊고 넓은 2중 해자다. 하나도 넘기 힘든 해자를 2개씩이나 헤치고 성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1614년 겨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만 대군을 이끌고 성안의 도요토미 히데요리(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를 공격했지만 2중 해자가 지키는 오사카성은 너무나 굳건했다.

공격하는 쪽과 지키는 쪽 모두 엄청난 피해를 주고 받은 후에야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에게 화의를 청한다. 이에야쓰는 "후퇴하고 싶어도 부하들의 마음을 돌릴 명분이 없다"며 자신의 체면을 위해 2중 해자의 바깥쪽만 메워 달라고 제의한다. 히데요리는 수 천 명이 목숨을 잃은 전투를 끝내는 상황에서 해자 하나를 메워달라는 것은 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명분 하나를 들어준 것으로 훗날 히데요리는 돌이킬 수 없는 댓가를 치른다. 이에야스는 2중 해자 바깥쪽을 메운 뒤 상황이 유리해지자 태도를 싹 바꿨다. 그대로 오사카성 턱밑까지 치고 들어갔다. 1615년 6월 오사카성은 이에야스에게 함락 당하고, 히데요리는 자결한다. 일본 역사를 바꾼 오사카 여름 전투는 그렇게 작은 명분 때문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엊그제 철도노조 파업 철회 소식에 사람들이 가장 궁금했던 것도 싸움을 끝내는 명분이었다. 정부와 철도노조는 '철도발전소위원회'를 명분으로 삼았다. 양측이 내세운 대표자들과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소위원회는 말 그대로 철도산업의 발전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제 남은 관건은 이 소위원회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심도 있게 논의하느냐다. 이번에 소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다음 철도 노조 파업은 더욱 극렬해질 것이다. 정부는 이 명분으로 시간을 벌었다고 해서 딴 소리를 해선 안된다. 노조도 최악의 파업으로 국민들의 엄청난 피해를 강요한만큼 이제 한발 물러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이에야스가 해자 하나를 메우는 명분을 찾기 위해 일부러 수 천 명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인지, 히데요리가 해자 하나를 메운다고 해서 오사카성은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고 믿은 것인지 지금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정부와 철도노조는 400년전 이에야스와 히데요리처럼 서로 죽여야 자신이 사는 관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갑오년 벽두부터 곳곳에서 큰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1월11일부터 대한의사협회 소속 11만여명의 의사들이 의료 민영화를 놓고 대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의사협회가 의료 민영화가 아닌 그들이 원하는 명분을 하나 얻기 위해 국민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비판도 들린다.

의사협회는 물론 앞으로 벌어질 이 사회의 다양한 갈등이 제발 단순한 명분 싸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거창할 것도 없다. '철도발전소위원회 가동'을 위해 22일간 파업을 하고, 4300여명의 조합원이 직위 해제 당하는 일만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한발 빨리 명분에 합의하면 거대한 사회적 손실도 없고, 여러 사람이 불편해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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