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리콴유 이후의 싱가포르

[MT 시평] 리콴유 이후의 싱가포르

박종구 기자
2015.04.03 07:04

지난달 28일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국장이 치러졌다. 싱가포르 모델은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의 롤모델이 되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는 ‘진정한 역사적 거물’이라고 평가했다.

리콴유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일까. 실용주의, 아시아적 가치, 인재제일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영국에서 유학한 변호사답게 매사를 실용주의적 자세로 접근했다. 생전에 자기 사후 75년간 살았던 옥슬리 거리의 낡은 집을 허물어 버리라고 당부했다. “집이 너무 오래돼 벽이 갈라지는 판이니 없어져도 자식들이 서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서 실용주의의 체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소위 국부로 추앙받는 마오쩌둥이나 호찌민 등의 저택이 잘 유지·보존되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리콴유는 아시아적 가치의 강력한 신봉자다.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아시아적 정치제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동양적 가치관과 글로벌 식견을 겸비한 흔치 않은 지도자였다. 민주주의의 본산인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신뢰감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세계의 거물 정치인이라는 찬사와 아시아의 마키아벨리라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리콴유가 정치와 언론을 엄격히 통제했다고 비판했다. 그가 싱가포르 국립대에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을 세운 것도 아시아적 민주주의를 체계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이 특히 싱가포르의 개발경험과 국정운영 노하우를 열심히 채택했다. 1990~2011년 약 2만2000명의 중국관리가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중국 정부의 핵심 관심사는 소위 근대화 함정에 빠지지 않을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정치적 참여와 민주주의 없이 국가발전과 근대화가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리 전 총리의 중국 개혁·개방에 대한 공헌은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리콴유의 인재제일주의야말로 자원빈국 싱가포르를 도약시킨 중요 인자였다. 그의 장례식이 싱가포르국립대학에서 치러진 사실에서 교육과 인재양성을 강조한 그의 국정철학을 엿볼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과 국제경영개발연구원 평가에서 상위를 놓치지 않은 것도 기업효율·교육·노동시장·인프라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국립대는 홍콩과기대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폴리텍대학은 기술인력의 3분의2를 배출하며 서비스, 경영, 엔지니어링 융·복합 인재양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민간부문을 상회하는 높은 급여, 과감한 권한 부여, 높은 청렴성 기준은 싱가포르 관리를 지구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정책집단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사후 싱가포르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전 유엔대사 토미 고의 말처럼 그의 서거가 싱가포르 장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가 구축한 국가운영체제는 비교적 탄탄하다. 그러나 심화되는 정치적 자유 요구, 이민증가, 빈부격차는 후계체제가 극복해야 할 3대 과제다. 키쇼 마부바니 전 대사의 말처럼 밀레니엄세대는 자국의 강점과 사회적 안정을 인정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보다 폭넓게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2011년 총선에서 집권 인민행동당은 다수당의 지위를 지켰지만 야당의 득표율이 무려 40%에 달했다. 섹스와 도박만 자율화한다는 ‘무늬만 자유화’ 논란도 더욱 증폭될 소지가 크다. 오랜 정치적 소외로 인해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않고 정부도 신뢰를 재구축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부족한 정치적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민확대는 싱가포르경제에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인구의 3분의1이 이민자다. 2000년 75만4000명에서 2014년 100만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동 기간에 영주권자는 거의 2배가 늘었다. 이민 증가에 따른 국가적 정체성 위기도 높아지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30년 인구를 690만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마카오, 홍콩 등과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했다. 개방적 이민정책이 불가피하다. 중국·말레이·인도계가 뒤섞인 다민족사회에서 민족간 균형과 통합은 국가안정의 초석이다. 이민급증에 따른 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10.5%에 달하는 노인인구 비율도 복지비용 증가와 사회 역동성 저하 차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심화되는 빈부격차는 싱가포르에 새로운 도전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비교적 균형잡힌 성장과 분배정책을 추구해왔다. 관대한 복지정책이 분배갈등을 줄이고 계층간 위화감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싱가포르의 균형성장전략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 기업효율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정책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경제력 격차를 심화시켰다. 중국계의 경제적 파이가 커짐에 따라 비중국계의 불만도 증폭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콘도, 상가 등 자산가격 폭등으로 부유층과 외국인투자자만 큰 이득을 보았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싱가포르의 지속발전 여부는 결국 얼마나 빠르게 포용적 정부와 정치체제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진하라 싱가포르여’ 라는 국가처럼 또 한 번의 도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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